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학업과 직업을 병행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번은 왜 이 과목을 듣게 되었는지, 마케팅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라는 과제를 내주었는데 흥미로운 글이 많았다.
“나는 지금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내가 직접 운영하는 정비소를 차리고 싶다. 그래서 마케팅 과목을 듣게 되었다.”
“지금은 학교에 다니면서 낮에는 베이비시팅을 하고 밤에는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네일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나는 미용업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웨이트레스를 하고 있다. 며칠 전에 보수가 더 좋은 다른 레스토랑에 지원을 했는데 인터뷰를 잘 못해 속상하다. 나 자신을 잘 소개하고 싶어서 수강하게 되었다.”
경제적인 사정이나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커뮤니티 칼리지를 선택한 이 학생들은 매우 근면하고 성실하다. 수업시간은 월요일 아침 8시였다. 대학 4년간 월요일 이른 아침 수업을 신청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수업 첫 날 강의실을 빽빽하게 채운 학생들이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졸업 후에 대기업에 들어가겠다거나 증권가에서 일을 하며 30대에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MBA 학생들과는 달리 이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수업을 들으며, 수업이 끝나자마자 직장을 향해 달려가면서 어쩌면 삶의 가장 실질적인 경험을 쌓고 있다.
공부 하나만 하면 되는 많은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그저 열정과 패기가 전부인 그들이 무모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현실에 순응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을 다해 사는 이들의 하루하루가 모여 어떤 형태로든 훗날 보답되어 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며칠 전 ‘꽃보다 누나’라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출연자인 배우 김희애에게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얼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싫다. 영화 한편 다 찍었는데 처음부터 다시 찍으라면 좋겠느냐. 밤새고 울고불고 다 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찍으라면 싫다. 지금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라이트 받으며 산 여배우라고 되돌리고 싶은 과거가 없을 리 없겠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연연해하지 않고 현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반증일 테니까.
내 학생들이 40대가 되어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혈기는 있었으나 무모했던 시절. 무엇이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또 그렇게 하고 싶어할 지 참 궁금하다.
이제껏 쌓아온 연륜이나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가지고 다시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청춘이니 그 나이에 맞는 무모함으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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