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처음 정식으로 대한 국사(國史)시간은 당혹, 그 자체였다.” 이제는 70을 바라보는 한 노교수의 술회다.
위만조선 시대니까 한국사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부터 대뜸 나오는 게 한사군(漢四郡) 기술이다. 출발점부터 식민 상태였나. 첫 장에서부터 맥이 풀렸다는 것이다.
조선조 시대에 들어가서는 아예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온통 사색당파 이야기로 뒤덮였다. 당쟁으로 골수까지 썩어 외세침략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것으로 기술되어서다.
한국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타민족의 지배나 받는 볼품없는 못난 역사였나. 관련해 제기되는 게 식민사관이다.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케 하고, 그들의 조상들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추어내 과장하여 가르쳐라.”
1922년 3대 조선총독부 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인 교육시책을 설명하면서 내린 시책이다.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해 온통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되면 실망과 허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를 일본이 조선인을 영구 지배하는 요결로 본 것이다.
그 일제가 서술한 조선사는 그래서 출발부터가 식민 상태였다.
독립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식민사관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국사 교과서를 대하면서 향학열에 불탔던 한 청소년은 커다란 실망감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하다. 지나치게 좌편향 됐다. 근현대사가 특히 그렇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 부정됐다. 북한을 미화, 찬양한다. 이런 교과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새로운 교과서가 만들어졌다. 교학사의 교과서다.
이 교과서 전쟁의 첫 스코어는 ‘1794대1’로 우파 측의 참담한 패배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좌파의 지적 테러의 결과다.” “교육계가 철저하게 좌경 세력에 의하여 장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파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아주 틀린 지적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단순히 그 때문만 일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좌파의 이른바 진보사관에 대한 접근방법이 안이했다. 그 방어자세도 졸속 일변도였다. 거기서 빚은 참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 졸속의 마인드는 여권의 국정교과서 회귀움직임에서도 읽혀진다.
한일합방 이전부터 치밀한 준비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게 일제의 식민사관이다. 좌파의 진보사관 형성과정도 그렇다. 오랜 탄압 속에서 나름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진 게 진보사관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위대한 저서는 커다란 죄악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시인 칼리마코스가 한 말이다. 진보든, 보수든, 좌우를 막론하고 역사 기술 앞에 보다 겸손한 지적 풍토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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