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처음 야생마를 길들인 것은 기원전 4,000년경으로 추산된다. 그 후 오래 동안 말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우선 말을 여러 마리 먹이고 기르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뿐 아니라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과 맨 발로 맞서 싸우는 사람은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에 수레를 달아 만든 채리엇이 등장했다. ‘고대의 전차’라 불린 채리엇을 발명한 히타이트 인들은 한동안 중동의 강자로 군림하며 위세를 떨쳤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중세 유럽 때까지도 말은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사는 중세의 상징이며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주력 부대이기도 했다. 스페인 말로 ‘신사’ 를 뜻하는 ‘caballero’는 ‘말 탄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말을 잘 이용한 사람들은 몽골 족이다. 이들은 서양 말보다 훨씬 작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조랑말을 타고 중앙아시아를 통일하고 중국을 정복하고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유럽을 거의 삼킬 뻔 했다. 몽골인 들은 말의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별도의 보급 부대를 두지 않고 말 탄 개개인이 자급자족 하는 체제를 택했다. 이 때문에 종전 군대가 몇 주일 씩 걸리는 거리를 며칠에 주파해 상대방 군대를 경악시켰다.
1241년 오스트리아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이들에게 징기스칸의 아들 2대 칸이 죽었다는 소식만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유럽 전역이 몽골의 말발굽 아래 신음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몽골군 지휘관들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철군하는 바람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몽골군이 이처럼 거침없이 광대한 지역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조랑말의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 덕이 컸다. 단거리에는 강하지만 조금만 달리면 허덕거리는 서양 말과 달리 조랑말은 몇 시간이고 끄떡없이 달릴 수 있다.
도대체 몽골군이 어떤 말을 타고 세계를 제패했는지 궁금한 사람은 제주도로 가면 된다. 끝까지 저항하는 고려군을 추격해 제주도에 온 몽골군은 제주도가 말 사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랑말을 대규모로 들여와 제주도를 거대한 말 사육장으로 썼다. 고려가 망할 때까지 200년 가까이 말 사육지로 사용된 제주도는 지금도 한국말의 3분의 2를 생산한다.
오랜 몽골과의 접촉으로 제주도에는 몽골의 피와 관습, 말이 많이 남아 있다. ‘조랑’이란 말 자체가 ‘뛰어난 말 타기 솜씨’라는 뜻의 몽골 말 ‘조로모리’에서 왔다.
갑오년 말의 해를 맞아 한국 정부는 제주도를 말 사육 특구로 지정했다 한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제주도는 말의 천국이다. ‘조랑말 체험 공원’과 ‘조랑말 박물관’ 등 조랑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설이 있고 곳곳에 승마 체험장이 있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광활한 대지를 마음껏 달리는 말은 웅혼한 기상의 상징이다. 갑오년 새해는 펄펄 나는 말처럼 모든 일이 시원하게 풀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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