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서 친지들,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 이웃들, 비즈니스로나 개인적으로 고마웠던 분들에게 드릴 선물을 일일이 사서 그것도 예산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포장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선물을 살 때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이 선물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하고 받아서 기쁜 선물일까 하는 점이다. 내가 좋다고 남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전에 한번은 내가 쓰던 목욕 용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 아이 선생님께 선물로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때 되면 제일 많이 받는 게 그런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는 후회했다.
어릴 때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는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기사였다. 그래서 겨울에 눈만 오면 버스가 미끄러져 사고가 날까봐 아버지가 극도로 긴장을 하고 힘들어 하시기 때문에 이번 겨울에는 제발 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즈음 매일 밤 “올해엔 꼭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였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마음을 접어야 했다.
최근 한 라디오 채널에서는 파병 군인들의 가족을 추첨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선물을 주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그들의 크리스마스 소원은 한결 같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이, 아들이, 손자가 그저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 있어 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며, 이번 크리스마스를 함께 하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너무 보고 싶다는 이야기로 청취자들까지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만들었다.
큰 아이는 올해 산타 할아버지가 체스 보드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은 보나마나 새로 나온 스마트 폰이 갖고 싶을 것이다. 옆집 아저씨가 몇 달 전에 수술을 했다고 했는데 자주 안부를 묻지 못했다. 그 집 식구들이 좋아하는 한국식 만두를 따끈따끈 쪄서 카드와 함께 드려야겠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게 ‘건강’을 선물하겠다. 1년 동안 수고한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시간이 없으니 마음의 여유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허망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다. 시간나면 인터넷을 뒤져 연예인 관련 기사를 살피고, 사지도 않을 옷들을 클릭하며 시간을 보내고, 지쳐있는 데도 습관적으로 TV를 켜 놓고 있고… 대부분 나의 상상력을 죽이는 일을 해 왔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시간을 잡아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곳에라도 놀러 갔다 오려고 한다. 그곳에 가서 빈둥거리고, 달리기도 하고, 반신욕도 하고, 노래도 불러 보면서 여유를 되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절대 자책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가 어떠했든 그 당시로서는 내가 결정한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믿고, 뒤돌아보며 후회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 나를 힘들게 한 이들 역시 나중에 보면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사람들이니 굳이 원망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나는 여유롭게 새해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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