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증후군 같은 게 있다. 가장 확실한 증상은 부산함이다. 연말이 되면 이래저래 바쁜 일들이 많이 생긴다. 또 바쁘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외로움에 빠지기 쉬운 때가 바로 이때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이런 부산함의 증후군 현상이 매우 인위적인 장치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달력이라는 시스템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연한과 일자를 계산하도록 하셨다고 말하나, 인간은 그 계산의 지혜를 활용해 달력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 지혜의 산물들을 자신들의 욕망 성취에 적극 활용해왔다. 달력이 없던 때는 이토록 부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잔다. 자신의 생일을 챙겨야 할 이유도, 필요도 못 느낀다. 그냥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과 정신을 맡기며 살아갔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맡기기보다는 시간을 통제하려고 한다. 그러니 부산해질 수밖에 없다.
연말의 부산함이 가장 극심한 나라를 꼽으라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미국이다. 어쩔 때 보면 미국은 연말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 같이 보인다. 추수감사절은 그 씨앗이며 성탄절과 신년 전야는 그 열매이다. 이 한 달 남짓한 기간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바쁜 기간이다. 소비자에게는 대책 없이 돈쓰는 기간이며, 생산자와 판매자에게는 한 해 수입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여야 하는 기간이다. 유투브에서 본 장면이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국 한 도시의 월마트 매장에서 누군가가 찍은 동영상인데, 거대 세일 품목 중 하나인 TV를 먼저 집어 들기 위해 몸집 큰 백인 남성이 여성을 짓누르는 장면이었다. 누가 먼저 집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TV는 입이 거칠고 완력이 센 그 남성의 수중에 들어갔다. 생글생글 웃으며 해피 할러데이라고 인사하는 표정과는 너무나도 정반대인 흉측한 모습들이 그 시즌의 첫 날 밤부터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런 모습들 때문에 이 시즌의 ‘특별함’ 전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지만 우리에겐 ‘즐길’ 권리가 있다. 하지만 ‘자제할’ 의무도 주어졌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특히 교회는 더 그러하다. 교회의 연말은 1년 중 제일 부산한 때다. 금년을 마감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추수감사절, 성탄절, 송구영신예배와 같은 굵직한 절기들까지 끼어있어, 이때엔 영과 육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면서 균형 있게 바빠야 한다. 그래서도 적절한 ‘즐김’과 적절한 ‘절제’가 필요하다. 그 적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진실(fact)’에 주된 관심을 두도록 해야 한다. 성탄절이 그 경우다.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물든 장식들, 루돌프 사슴코, 산타 할아버지, 과도한 선물들, 이런 것들과 성탄절의 진실과는 거의 무관하다. 선물을 돌리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진실’이 없이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진실’ 대신 ‘덩달아,’ 또는 ‘멋모르고’는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는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셨다. 십자가라는 처절한 구속행위를 염두에 두고 오셨다. 그런 치명적인 진실이 은폐된 상태에서, 그가 이 땅에 오신 게 왜 기쁜 일인지도 모르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하지 말자는 뜻이다. 사람은 진실을 매장시킬 수도 있지만 매장된 진실을 다시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현대적 의미의 성탄절 가운데 취해 있는 자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래서 “진실 대신 덩달아” 식의 성탄절이 되지 않도록 하자. 진실을 찾는 일에 부산함은 오케이다. 반면 ‘덩달아 식’ 부산함에는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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