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벌써 11월이다. 보통 이맘때면 그해에 못 다한 일들을 아쉬워하곤 했는데, 올해는 연초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빡빡한 일정으로 출장 다니며 일한 덕분에 이번 주부터 꿀맛 같은 휴가를 즐기고 있다. 새 학기는 내년 1월에나 시작하니 한 달을 통째로 쉴 수 있다.
이거야 말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다. 친구가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는 성경 구절을 문자로 보내줬는데 그걸 읽는 순간에도 ‘그럼 수고 많이 했지. 난 많이 먹어도 돼…’ 하며 피눈물 흘려 뺀 살을 도로 찌우고 있었다.
열심히 일한 내가 기특하긴 하다. 무엇보다도 일을 통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직장을 찾을 때도 연봉 보다는 자신의 꿈을 들여다보고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진짜 직업을 택하게 할 생각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가족의 이해와 협조 덕분이었다. 일하느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미안해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아이들과, 내가 없을 때는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에게 엄마 역할까지 했던 남편. 출장을 앞두고 부쩍 예민해지는 내 옆에서 티 안나게 도와줬던 그들에게 감사한다.
올해 일이 늘어나면서 결과적으로 소중한 시간들을 놓치기도 했다. 자주 출장을 다니다 보니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다. 학생들을 대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열정과 패기, 순수함과 넘치는 아이디어 등을 올해는 자주 접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피곤함이 누적 되었는지 마지막에는 심하게 아프기도 했고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다. 부모님은 생신이나 명절 때나 겨우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던 비영리재단의 정기 모임에도 몇 번 참석하지 못했고, 봉사하던 곳에서도 정작 필요할 때는 자리에 없던 불충실한 멤버였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욕심을 내다보니 삶의 균형을 잡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삶의 기준은 분명히 있다. 확실히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니 일과 더불어 다양한 삶의 가치들을 어느 정도 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주름과 더불어 얻어지는 선물 같다.
이제는 내 것이 아니라 여겨지는 것들은 더 이상 바라지 않고, 노력하면 얻을 수 있을 정도의 것에 마음을 쏟고 싶다. 하지만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현실을 흔쾌히 받아들이려 노력하겠다. 그 기로에서 갈등과 고민이 생기면 언제나 어느 성직자의 기도문을 떠올리겠다.
“내가 변경할 수 있는 일에는 도전할 용기를 주시고, 내가 변경할 수 없는 일은 겸허히 받아들일 침착함을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쓰다 보니 또 올해 못다 한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쉬면서 살이나 찌우지 말고 지금부터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단정하게 꾸며 ‘하우스’ 말고 ‘홈’을 만들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닮아가고 싶다. 올해 고마웠던 사람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음 쓰지 못했던 친구들을 초대해 없는 솜씨나마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절대 나중으로 미룰 수 없다는 걸 다시 배우고 싶다. 올해는 양가 부모님께 뜻 깊은 선물을 드렸으면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폼 나게 세워 아이들과 꾸미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눈치 채지 못하게 물어도 봐야하고… 그래, 아직 한달이나 남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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