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아 / 광고전략가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최근에 5촌 고모가 돌아가셨다. 나이 마흔 아홉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분은 집안에서 총명하기로 유명했다. 인물 또한 뛰어나서 항상 인기도 많고 어딜 가나 환영 받던 분.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던 여인. 대장암 진단을 받은 지 일 년만에, 고통스런 항암치료 받기를 여러 번, 결국 고등학생과 대학생 두 명의 자녀를 두고 그녀는 떠났다.
나의 친할머니는 올해 90세다. 혼자 작은 밭을 일구시며 살고 계신다. 여전히 정정하시고 기억력이며 사고력도 좋으시다. 할머니의 어머니, 나의 증조할머니는 백세 때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했던 시대도 아니었는데, 큰 지병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고 했던가. 나이가 좀 들고 나니, 젊은 나이에 돌연사하거나, 평균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뜨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나는 할머니를 닮아 백세를 살수도 있고, 집안에 암 유전자가 있으니, 어쩌면 5촌 고모처럼 평균 연령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회사에서 나이든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젊은 세대들이 이끌어가는 광고업계라 더 그렇겠지만,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회사의 중역이 되지 않는 이상 퇴물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나면 소리 소문 없이 그들은 사라진다. 개인차가 있고,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 오래 남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10여년 동안 살펴본 직장의 모습은 그랬다.
그래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직장 외 다른 생활을 도모해보고자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도 없고 체력도 부족하다. 그럴수록 점점 더 회사 내에서 줄을 대는 일에 열심이거나, 조그마한 가게라도 차려야 한다며 열심히 적금을 부어나간다.
번듯한 직장을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취직 후 온몸을 바쳐 일해 온 시간이 허무하다 느끼지만 그것조차 한가로운 생각일 뿐, 남은 인생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더 크게 밀려온다.
사회적으로는 조로 하고, 생체적으로는 장수 하는 세대. 내 수명의 길이가 얼마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모 세대보다 장수할 확률은 높다. 과연 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사십도 안 된 나이에 백세의 삶을 생각하는 건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긴 안목으로 삶을 바라보지 않으면, 현실 속에 파묻혀 큰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거나, 준비할 시간을 놓쳐 버린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 하는 일, 하고 있는 생각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 또 다른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 세상의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볼 것,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외치기 전에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발휘해서 세상을 조금 더 공평하게 만들고자 애쓸 것,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공감 능력을 키울 것, 그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좀 더 너그럽고 다정해질 것.
긴 인생이 막연하듯, 긴 인생을 준비한다는 것 또한 막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인생을 얼마나 값지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실행해 나가는 것은 막연한 일이 아니다. 삶의 길이를 재볼 것 그리고 하루하루 속에서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는 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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