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클래식 음악회에 다녀왔다. 큰 기대와 관심 없이 갔던 터라, 처음엔 겨우 프로그램명을 알고 있을 정도였는데,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은 후 작품 소개를 시작으로 지휘자와 연주자까지 검색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날 연주에 관한 주관적인 감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이것보다 저것이 낫다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주장을 뒷받침할 가공할 양의 지식과 정보들을 제시했다. 그에 비하면 그날 나의 감상은 짧고 초라했다. 혹 “이것이 낫다”고 하는 나의 말이 스스로 문외한임을 밝히는 부끄러운 고백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염려를 불러일으킬 만큼.
이튿날에는 꽃을 선물 받았다. 조금 생소한 모양과 향기의 꽃을 한참 바라보다, 여러 차례 건너 물어 꽃의 이름을 알아냈다.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도 건네지는 느낌은 분명 있었지만, 확인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전화기를 꺼내 꽃말을 검색해봤다.
하지만 꽃말의 전문가라 자처하는 네티즌들이 올린 다양한 꽃 사진과 설명을 읽다 느낀 감정은 의외로 ‘혼란스러움’이었다. 받은 꽃의 꽃말이 개인적인 감상 혹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한 그 모든 게 사실일까? 도대체 ‘꽃말’이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생각과 정의는 정말 타당한 것일까?”란 공연한 반발심까지 갖게 됐다.
우리는 종종 모르는 것이 생기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찾고 말하기에 앞서 인터넷 검색사이트를 통해 타인의 견해를 구하곤 한다. 그 의견의 진의나 사실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많은 이들에게 소개되고 공유된 무엇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어느 정도 큰 힘을 갖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의외로 ‘사고하는 일’에 게으르고 서투르다.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누군가의 설명과 정의에 쉬이 의존하며, 그제야 그것이 제 것인 양 자신감을 갖고 피력하는 경험은 정보화 사회에서 크게 새롭지 않다.
사유와 대화를 즐기며 사고를 풍성하게 하는 작업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함으로 시작되는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물론 지식과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부족하더라도 단순히 대중의 의견과 다름을 두려워하여 가감 없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일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유독 온라인상이긴 하지만, 꼭 타인의 공감을 얻거나 주변에 영향력을 끼쳐야겠다는 목적 없이도 누군가 예사로 던진 질문에 마치 홍수같이 답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 많아진 현 세대를 향해 “철학이 없다”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그 최전선에 서있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 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과거 소크라테스의 죄목을 공공연히 옹호한다. 그가 정의하는 ‘타락’이란, 대다수가 옳다고 인정해 지배질서 안에 기어코 세워놓은 무언가, 그래서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다고 치부된 ‘그것’에 대한 의심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젊은이라면 기존의 지배질서가 아니라고 밀어놓은 것 가운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지적하거나, 옳다고 못박아놓은 것을 흔들어보는 작업 역시 주저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왠지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보는 작은 적용이라면, 이 용기 있는 타락을 시작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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