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던 어린 시절, 전기사정이 좋지 못했던지 어느날 밤 정전이 되고 말았다. 세상이 모두 어둠에 잠긴 그 때, 두려움에 떨던 우리 형제를 어둠에서 구해준 건 어머니가 찾아오신 양초 하나였다. 작은 촛불은 이내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고, 우리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촛불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였다. 지난 토요일, 남가주 동신교회에서 열린 자선 음악회이다. 실로암 선교 미주후원회의 주최로 열린 제2회 자선음악회. 목적은 시각 장애인들이 이 세상의 밝은 빛을 볼 수 있도록 개안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몇 개월 전에 창단된 ‘크리스천 헤럴드 미션 콰이어’를 이끌고 이 행사에 참여했다. 창단한지 두어 달 밖에 되지 않은 합창단인만큼 지휘자로서 부담감이 컸지만 열심히 준비했고 감동은 배가 되었다. 몇 해 전의 제1회 음악회에는 ‘박트리오’가 초청 게스트로 출연했었기 때문에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사이다.
자선 음악회에 참석한 관중들의 도네이션과 참가한 팀들이 준비한 후원금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들이 세상의 밝은 빛을 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참석자 모두가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한 분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였던 고 강영우 박사다. 오래전 필자가 다니던 교회에서 멋진 강연을 했던 그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두 아들에 대해 간증했다. 장남인 폴 강 박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을 고쳐주고 싶어 안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은 그의 인생의 목표가 되었고, 그는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후 조지타운대 의대 안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자랑하는 것이 멋쩍다던 고 강영우 박사. 비록 그는 세상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세상을 보고 있었다. 2011년 12월 투병 중이던 강 박사는 지인들에게 연하장으로 자신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며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다”는 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와 함께 떠오른 또 다른 사람은 나의 제자인 피아니스트 노유진 양이다. 유진이는 시각 장애인이지만 당당히 세계 유수 음악대학 중 하나인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대에 합격한 실력파 피아니스트다.
처음 유진이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필자의 피아노 스튜디오로 찾아왔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앞을 못보는 제자를 가르칠 생각에 나 역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앞을 볼 수 없는 유진이의 손을 나의 손 위에 얹고 피아노를 가르치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그녀의 실력은 날로 발전해 나갔다.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로 유진이는 대학에 합격했고,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준비 중이다.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지만 음악 속에서 새로운 빛을 찾아가던 그녀는, 예전에도 지금도 나를 웃게 만든다.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진 탤런트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자신을 녹여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