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총리의 어제 대국민 담화는 뜬금없다. 담화의 요지는 실물경제가 살아날 조짐이니 국정원 댓글 사건과 NLL(서해북방한계선) 관련 의혹을 둘러싼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법안들을 통과시켜 달라는 것인데, 내용은 물론 형식도 적절치 않았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겠다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 사건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제도개혁 요구를 정쟁으로 묶어버리는 듯한 정 총리의 어법은 경제나 안보를 빙자해 비판 목소리를 용인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고 틀을 연상시킨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의혹을 제기하고 외교적 부담까지 감수하면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측은 정부·여당이다. 국정원 등의 대선 개입 증거들이 드러나도 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신(新) 관권 선거’에 대한 우려를 ‘대선 불복’으로 몰아가는 것도 여당이다. 국기문란 사건이 터져도 침묵하는 것이 나라의 장래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 총리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믿고 기다려 달라, 재판과 수사 중인 이 문제로 더 이상 혼란이 계속된다면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현재 드러난 증거, 검찰 기소 내용을 토대로 국정원이 자체조사를 벌이면 진실의 대강이 드러날 것인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곧 내놓겠다던 자체 개혁안의 골자조차 나오지 않은 마당에 어떻게 무조건 믿고 기다려 달라는 것일까.
형식도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여러 차례 사설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프로야구 시구나 독도 행사에 참석하며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자세를 취하는 대신 총리가 나서서 정쟁 중단을 촉구했다. 적극적이고 진지한 문제 해결보다는 적당히 비켜 가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진정한 정쟁 중단은 총리 담화가 아닌 철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정원 개혁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해법은 단순하고도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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