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사색의 시간이 어색하지 않은, 바야흐로 10월이다. 별다른 기대나 노력 없이도 익숙한 것에서 작은 변화를 찾아내는 일이 상대적으로 잦아지는, 심적 여유와 관용에 관해서라면 계절적 특수를 누리는 때라 할만하다.
사색에는 침묵이 선행된다. 그리고 사색의 말미엔 결국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자아와 당혹스러운 만남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에 대수일까.
격류에 휩쓸려 한껏 격양됐던 신경이 얼마간 누그러지고, 마치 군율처럼 따르던 것들에 적당한 방만함을 부려도 될 것 같은 계절의 시작, 그런 포용력을 자랑하는 시월이 아니었던가.
계절이 바뀌고 이제 좀 익숙해진 듯한 한해가 저물어간다는 자각이 들 때면 여지없이 이처럼 삶의 여정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자문하게 된다.
그럴 때면 가장 먼저는 한해의 노력이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던 소설가 폴 오스터 식의 가련한 ‘허공에의 질주’는 아니었을까 염려가 된다.
하지만 이내 더 나아질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대하고 희망하며, 날마다 짙어지거나 혹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감정이 느껴지는 걸 보며 안도하게 된다.
위의 태도만큼 소모적인 것이 또 있다. 철학자 세네카는 인간을 움직이는 삶의 동기들을 언급하며 “화가 나야 비로소 용감해지고, 욕망에 사로잡혀야만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두려움 없이는 잠잠해질 줄 모른다면 마음이 어떻게 진정한 안정을 찾겠는가”라고 말했다.
‘용감’이나 ‘활기’ 같은 미덕을 ‘화’나 ‘두려움’ 같은 소위 악덕의 도움에 의지해야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것을 부끄러운 일이라 단정한 그의 말이 꼭 아니더라도 우리는 조금 더 좋은 동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명성에의 욕구도 강력한 삶의 동기가 된다. 하지만 좀 더 나은 평판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써온 가면이 거짓된 자신의 인격으로 자리 잡아 밤낮 괴로워하는 이들을 우린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많은 순간들은 실제 불안함에서 기인하며 끊임없이 ‘결핍’에 집중하게 될 때 불안감은 더욱 가중된다.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의 부족함을 따지는 일은 얼마나 소모적인지. 조금만 눈을 돌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주력하는 삶의 태도의 필요성을 절감할 때가 많다.
매해 맞는 시월, 하지만 그 감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서운하기도 하다. 한발 앞서 계절을 반기던 발걸음에 주저함을 깃들이는 크고 작은 일상의 고민들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이라면 ‘잉여’라는 자조적인 단어로 그들을 무력감의 감옥에 가두는 세상을 향해 한 줄의 거창한 삶의 목적이나 동력을 언급하는 대신, 근근한 일상에 적잖이 찾아드는 고단감과 피곤감을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싶다. 언젠간 주름을 겁내지 않고 파안대소할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 서있게 될 바로 그 날이 날마다 마치 제자리걸음 같았던 그들의 젊은 날의 진의를 외쳐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휴일> 속 선술집 회벽에 적어놓았다던 누군가의 씩씩한 낙서처럼, ‘종달새처럼 즐겁게, 냇물처럼 꾸준히, 태양처럼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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