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사범대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하다 망명한 김현식 교수(사진)가두 번째 자서전‘ 80년, 7만리’를 최근출간했다.
‘목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유언을지키지는 못했지만 한국에 와 기독교를 받아들인 김 교수의 신앙 간증집이기도 한 ‘80년, 7만리(홍성사 간)’에는 첫 번째 자서전 ‘나는 이념의유목민’에서 다루지 못했던 자세한삶의 여정이 기록돼 있다.
1932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그는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큰 부상을 당하고 의병 제대했다. 전쟁중 개교한평양 김형직사범대학(당시 평양사범대학)에서 러어러문학을 전공해 교수가 됐고 80년 인생의 절반인 40년을평양에서 엘리트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냈다. 그 제자들 가운데는 김일성 처남의 자녀들도 있었고김정일도 있었다. 러시아 국립사범대학 파견교수로 떠난 길은 가족의 품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망명으로 귀착됐다. 한국에서는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남북언어 통일과 북한 학생들의 국제화교육을 위한 사업에 힘썼다.
급성 뇌출혈로 왼쪽 팔다리를 쓸수 없게 된 불행은 오히려 그를 남한으로 보낸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계기가 됐다. 이후 미국으로 와 ‘남과 북이 함께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집필하는 등평양 성경 출판 사업에 주력하면서 하버드, 미시간,듀크 등 유수대학 초청 강사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있다.
북한의 가족에게 돌아가느냐, 민족을 택하느냐는 망명 결정 당시의 숨막혔던 상황을 서술하며 1부를 시작하는 ‘80년, 7만리’는 2부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는 등 북한에서자라고 생활할 때의 기억과 증언으로 이어진다.
3부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가려지고 잘못 알려진 북한의 맨살이드러난다. 김 교수는 분단 이후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남북 간에 거대한벽이 생겼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북한을 속속들이 알고 이해해야한다고 믿는다. 최고의 엘리트를 자처했으면서도 인권이라는 단어의 뜻을몰랐던 기막힌 북한의 실상은 김 교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김 교수가 독자들에게 헤주고 싶었던 말은 4부에 모아졌다. 그가 경험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않을 수 없는 경이로운 역사였다. 철저한 유물론 신봉자였던 황장엽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을 했던 일, 북한교회 건설을 당부하고 떠난 주일학교 선생님, 백건우·윤정희 부부가 베풀어준 결혼기념일 만찬 등 그에게허락된 만남과 사건은 ‘진빨갱이 교수’를‘ 평양말 성경’을 만들도록 하려는 섭리였다. 2007년 워싱턴에 세워진 ‘평양성경연구소(PBI)’는 지리적인 통일 이전에 영적으로, 언어적으로 남북을하나 되게 만드는‘ 통일로(統一路)’인것이다.
임창호 고신대 교수는“ 북한을 3D로 볼 수 있는 증언이자 복음 통일을준비하는 모든 이가 읽어야 할 전략서”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PBI 홈페이지 www.pbidc.org<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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