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들은 일중독자(workaholic)예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원망은 아니다. 미국에 이민와 1세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긴 말이다.
뉴스타 부동산의 백영주 보스턴 지사장, ‘크라우저 & 서’ 법률사무소의 스티브 서 대표는 남매(사진)다. 1.5세로 미국에서 자라 각자의 영역에서 또 다른 성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두 사람은 “우리들의 현재는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모범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영어를 잘 못하시던 아버지도 해냈는데 라는 말로 늘 나 자신을 채찍질 했어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좋은 신앙의 본이 되어주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이 됐는데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백 씨는 지병을 2년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가신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신적 멘토였던 아버지 서우석 씨는 1980년 마이애미로 이민 와 처음엔 보석 사업으로, 다음엔 부동산 투자로 크게 성공하셨다. 늦은 나이에 하나님을 만난 그는 신학교에 가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할 만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남모르게 이웃을 섬겨왔다. 모기지를 내지 못해 쫓겨나게 된 한인교회를 몰래 도와줘 위기를 면하게 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이 너무 많아 놀랐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한 번도 1등 하라고 하지 않으셨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셨기에 그대로 하려고 노력 했다”고 말했다.
2009년 뉴스타 부동산을 시작한 백 씨는 지난 3년 간 미주 전체 프랜차이즈 가운데 두 번 째로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 짧은 기간에 거둔 놀라운 성과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매물 리스팅을 챙기는 노력 때문이었다. 플로리다주립대를 졸업한 백 씨는 아버지처럼 신학교도 나왔다.
마이애미와 보스턴, 워싱턴에 각각 사무실을 둔 ‘크라우저 & 서’ 법률회사는 7명의 파트너 가운데 한인이 4명이다. 스티브 서 변호사는 “앞으로 한인들로만 구성된 법률회사를 세워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꿈을 이루기에 앞서 현재도 서 변호사는 한인사회내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민주평통 위원으로 있고 마이애미한인회 임원으로도 일했으며 마이애미한인재단의 사무총장도 맡았다. 최근에는 샘 윤 전 보스턴 시의원, 마크 김 버지니아 주하원의원 등이 결성한 전국 한인단체 컨소시엄 ‘CKA(Council of Korean American)’에도 관여하며 차세대 한인들의 정치 역량과 위상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리 세대는 능력은 있지만 게으르죠. 목표를 향해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도 없구요. 저희는 다리가 되어 부모 세대가 남긴 훌륭한 유산들을 후대에 전하고 싶습니다.”두 사람은 그 유산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던 부모님의 신앙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고 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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