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나탈리 크나프는 ‘휴식’을 ‘자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장소에 이르는 것’이라고 멋지게 정의했다.
새로운 다짐으로 달려온 2013년 한해도 점점 그 후반부를 향하고 있다. 소정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심으로든, 혹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고단함으로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새해 새 다짐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 소진되어 휴식을 갈망하는 때가 되었다.
많은 생각과 지나친 욕심은 삶의 간결함을 좀먹는다. 어쩌면 덜 중요할지도 모를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전부인양 착각하는 사이 우리는 진정 중요한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되며, 이후 그 과정에서 양산된 잘못과 실수들을 만회하기 위한 수고를 감내해야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무상함만을 한탄하거나, 자신의 참된 실체를 감지하지 못함으로 감사에 이르지 못하는 것 역시 삶의 불완전함을 부추기는 소모적인 태도이다.
무결하고 건강한 삶의 태도를 고수하고, 발전과 개발이라는 순작용만을 기대하며 나아가기에 인생이란 길엔 너무 많은 좌절과 고초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일한 상황의 소모성을 탓하기보다 정신적 부산함과 소란함을 잠재울 자신만의 쉼의 뿌리를 알고 적절히 누릴 줄 아는 것이 지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진되어가는 것을 다시금 채우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날마다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언가라면 그 욕구와 필요는 더욱 간절해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독일 작가 울리히 슈나벨는 몇 해 전 자신의 책 <휴식: 행복의 중심> 출간 관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휴식은 여행이나 휴가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평소 악기를 배워 연주하거나, 업무시간 중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일하기 직전 짧은 명상시간을 갖는 등 세간의 명성과 생계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바로 휴식”이라며, “일상의 작은 노력으로 삶의 용기와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휴식을 취하고, 이를 통해 창의력이 샘솟는 활력 넘치는 삶을 살자”고 했다.
이쯤에서 다시 나탈리 크나프의 휴식의 정의로 돌아가 보자. 나탈리가 지적한 ‘장소’가 꼭 물리적 장소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어떠한 존재였는지, 또 그 존재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 꼭 장소로 한정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 ‘곳’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상황이건 특정 장소이건 간에, 닿는 순간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곳에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울리히 슈나벨의 제안대로, 일상 속 작은 시도로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여, 무엇이든 다시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충전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반갑고 다행스런 일이 있을까.
휴식이 결국 ‘자기다움’의 회복이라는 설명이 참 고맙다. 실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되찾아야 할 무언가가 수억만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가정이 주는 작은 위로 때문이다. 자신의 실체와 진가를 알아주고 회복시켜주는 누구 혹은 무엇과의 조우, 바로 오늘 그 꿀맛 같은 휴식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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