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이 발효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링컨은 1862년 9월 22일 새해 1월 1일까지 반란을 일으킨 남부 주들이 연방으로 복귀하지 않을 경우 반란을 일으킨 주에 살고 있는 흑인 노예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라고 선포했다. 이들 주들은 1863년 1월 1일까지 아무도 연방으로 복귀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들 주에 살고 있던 노예들은 자유인이 된 것이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은 여러 가지 결함을 갖고 있었다. 첫째, 남부 주들은 이 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살던 노예들은 계속 노예로 남아 있었다. 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이 선언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둘째, 노예제를 시행하고 있어도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미주리, 켄터키, 메릴랜드, 델라웨어 주에는 이 선언이 효력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 주의 노예제는 헌법을 고쳐 노예제가 폐지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이 선언이 이처럼 불완전했던 것은 링컨에게 노예제를 폐지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은 군 통수권자로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만 유효했다. 미국 전체의 노예 해방은 1865년 1월 31일 노예제 폐지를 명시한 수정 헌법 13조가 연방 의회에서 통과되고 그 해 말 각 주의 비준을 받아 확정된 후에야 비로소 이뤄졌다. 이 과정은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링컨’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서도 남부의 흑인들은 온갖 차별에 시달리며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들이 법적으로 동등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1964년 연방 민권법과 1965년 연방 투표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 법 제정의 기폭제가 된 것은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주도의 워싱턴 DC 행진이었다. 여기서 킹 목사는 “나는 인간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대접받는 사회를 꿈꾼다”는 내용의 “나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명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링컨 이후 인간 평등에 관한 최고의 연설로 평가받고 있다.
28일은 워싱턴 행진이 있은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워싱턴 DC에서는 킹 목사가 연설을 했던 자리에서 50주년 기념행사가 오바마 대통령과 카터,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링컨에서 킹으로, 킹에서 오바마로 이어지는 미국 사회의 변화는 느리지만 인간 사회는 발전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분열을 막고 노예제 폐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군인과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에 맞서 싸운 민권 운동가들의 피땀 위에 이만큼의 전진이 가능했다. 뒤늦게 이민 와 그 덕을 보고 있는 한인들 모두 이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