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인쇄, 화약과 나침반은 ‘중국의 4대 발명’이라 불린다. 공교롭게 이들은 모두 중국인에 의해 발명됐으면서도 서양으로 건너가 서양인들에 의해 활용돼 서구 열강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신대륙, 아프리카를 먹어 삼키는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서양인들은 종이와 인쇄로 값싼 책을 대량 생산해 전까지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온갖 정보와 지식을 일반인에까지 널리 퍼뜨렸고 이는 서양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로 중국보다 월등한 성능의 화약과 나침반을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배를 타고 먼 나라까지 쳐들어 가 힘없는 나라를 식민지나 속국으로 삼았다.
이 네 가지 발명품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을 들라면 종이와 인쇄, 그 중에서도 종이를 들어야 할 것이다. 종이 발명 이전까지 정보 전달 수단이던 대나무와 양피지 따위로는 정보의 대량 생산이나 전달이 불가능했고 따라서 기술 혁신도, 이를 바탕으로 한 남의 나라 침략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원 105년 후한 시대 채륜이 발명한 이래 최근까지 주 정보 전달 수단이던 종이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지 불과 20년도 안 돼 위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 초창기만 해도 이를 이용하려면 책상 앞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후 랩탑에다 넷북 등 들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가 나오더니 불과 지난 2~3년 새 스마트 폰과 태블릿 PC가 주요 정보 전달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종이는 그 효용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 동네 책방의 위기로 시작된 종이의 몰락은 최근 들어 대형 서점으로 옮겨 가고 있다. 2년 전 전국 2위의 대형 서점 체인 보더스가 폐업하면서 한때 반짝 하는 것 같던 미 최대 서점 체인 반즈 앤 노블사가 요즘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보더스가 문을 닫을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책 시장이 종이에서 전자책으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보더스는 이에 대한 대비를 전혀 안 해 그렇게 됐다고 분석했었다. 그러나 반즈는 자체 e북 리더 겸 탭 PC인 ‘누크’(nook)를 개발해 그 판매에 열을 올리며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려 애썼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패드와 아마존의 킨들이 자리 잡고 있는 e북 리더와 태블릿 시장을 반즈가 뚫고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1일 이 회사의 손실이 8,700만 달러로 작년의 2배, 누크 매출은 20%가 줄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반즈 주가는 하루에 12% 폭락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하락세를 되돌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는 점이다. 1886년 창립돼 현재 미국 50개 주에서 670여개, 대학 내에서 68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반즈는 향후 10년 간 가게의 1/3을 닫을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이보다 훨씬 많은 점포가 문을 닫거나 아예 회사가 폐업하는 보더스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도 없다.
종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슬픈 뉴스지만 종이든 e북 리더든 궁극적 목적은 독자에게 편리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고 그 선택권은 결국 독자에게 있다. 2,000년 동안 충실한 정보 전달자 역할을 해 오던 종이가 점차 대나무와 양피지의 뒤를 잇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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