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혼란스러우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자들이다. 세상이 평온하다고 해서 힘없는 자들의 삶이 평온한 것은 아니다. 가진 자들에 짓눌려 사느라 설움이 크다. 그래도 대개는 예측 가능한 박해와 탄압이니 견뎌낼 수가 있다.
세상이 혼란에 휩싸이고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면 힘없는 자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에 내던져진다. 사회적 분노의 희생양이 되고 사회적 분풀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되기도 하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는 격이 되기도 한다.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강경진압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끝모를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이집트에서 기독교인들의 처지가 바로 그렇다. 무슬림형제단이 주축이 된 반정부 시위대들이 툭하면 기독교인들에 대한 약탈과 방화, 폭력행위로 분노를 터트리니 이들의 설움이 크다. 이집트의 소수계 중의 소수계인 기독교도들의 설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이다. 국민의 열 중 아홉은 이슬람교도들이다. 그런가 하면 이집트는 기독교와 인연이 대단히 깊은 나라이다. 우선 아랍권에서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다. 국민의 10% 정도, 1,000만명 내외가 기독교인들이다.
아울러 이집트는 기독교의 뿌리가 가장 깊은 곳에 속한다. 신약성서 중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술한 마가가 전도의 씨앗을 뿌린 곳이니 그 역사가 1,900년이 넘는다. 그보다 앞서 이집트는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예수 탄생 시 헤롯왕이 어린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하자 요셉은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했다. 이렇게 뿌리는 깊지만 이집트 기독교 즉 콥트 정교회의 역사는 수난의 연속이다.
곱트 정교회 초대 교황으로 불리는 마가가 이집트를 방문한 것은 AD 50년쯤으로 추정된다. 마가는 베드로를 도우며 로마에서 전도여행을 하던 중 이집트로 가라는 천사의 지시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다.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마가의 전도는 성공적이었다. 기독교도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그러자 알렉산드리아 기득권층이 위협을 느끼면서 마가는 순교를 당한다. 이집트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가 기독교도 박해를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이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콥트정교회는 잠깐 황금기를 누리지만 7세기 아랍인들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길고 긴 수난의 역사로 내몰린다. 왕조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기독교도에 대한 탄압과 차별은 바뀌지 않았다.
요즘 콥트교도들이 맞는 수난은 이들의 애매한 입장과 상관이 있다. 독재자 무바라크를 대놓고 비난할 수 없었고, 최근 무르시 전 대통령을 몰아낸 군부에 반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무바라크는 정권 강화를 위해 극단주의적 이슬람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그 것이 콥트교도들에게는 약하나마 보호막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무바라크가 축출되자 콥트교도들을 맞은 것은 겨울이었다.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 건설을 꿈꾸는 무슬림형제단이 세력을 잡게 되면서 종교적 탄압이 거세졌다.
이집트는 극단적 종교국가냐 세속의 일반국가냐를 두고 둘로 갈라져 피투성이 싸움을 하고 그 사이에서 기독교도들의 오랜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천년의 설움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