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로 보이는 두 젊은 여성이 뭔가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 앉은 흑인청년과 눈이 마주친다. 뜻 모를 미소를 짓는 것도 잠깐. 두 여성의 입담은 계속된다. 깜둥이 운운 하면서 흑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흑인청년이 여성들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정확한 한국말로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하지 말라고 항의한다. 순간 여성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는 사과를 한다. 흑인청년이 사라졌다. 그러자 여성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웬일이니, 깜둥이가 한국말을 다하다니.”한국의 전철 안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한 외국인은 이런 제의를 한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한국의 길거리에서 구사해 보라고.
싸늘한 눈빛으로 대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대놓고 욕질을 해대는 사람도 있다. 놀리는 듯 대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물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한국인들이 외국인, 특히 비(非)영어권에, 특히 유색인종의 외국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몸으로 겪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 진출한 한 한국 지상사가 인종차별 소송을 당했다. 현대중공업 건설장비 미주법인이 해고된 백인 간부사원으로부터 인종차별 소송을 당했던 것.
현대중공업이 한인 직원들만 선호하면서 백인은 자신은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것이 소송의 요지로 부당한 해고에 대한 배상금으로 60만 달러를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다.
연방법원은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업상의 이유로 한국어와 스페인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을 필요로 했다는 현대중공업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회사 측이 한인 직원을 선호하는 것은 사업적 이유로 판단된다며 비록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직장 내에서 한국어가 주요 소통 수단임을 고려하면 특정 인종 선호가 상당 부분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일단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께름칙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 직원들끼리만 밥을 먹고 골프를 치는 바람에 소외를 느꼈다는 원고의 주장이 우선 그렇다.
법원은 인종차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다.
또 이런 말도 들린다. 새로 부임했던 고위간부가 미국에서는 금기인 ‘피부색과 연령’에 관한 발언을 공공연히 해왔다는 것이다. ‘회사의 얼굴’을 미국인에서 젊은 한국인으로 바꿔 놓는 게 임무’라는 식으로.
고소인이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 원고승소 판결이 나오고 또 그로 그치지 않고 심각한 인종차별문제로 비화되지 않았을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지 말란 법이 없다는 말이 있다. 깜둥이, 짱깨, 쪽발이 등의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것이 아직도 한국의 일상이고 현주소여서 우려되는 것이다.
이번 소송은 그런 면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겐 이번 사건이 인종편견에 대한 근본적 사고의 변화를 모색하는 자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