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나온 지 24년 … 나는 올해에야 비로소 한국의 뜨거운 여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해마다 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는 해도 대개 벚꽃이 만발하는 4월이나 초록빛의 5월로 일정이 잡히곤 했다.
그러다보니 고국의 한여름 무더위를 생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올해는 100년 만에 찾아온 폭염이 아닌가. 습하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그야말로 찜통더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보낸 며칠은 무더위마저 잊을 만큼 뜻 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이곳에서의 경험을 감사하고 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천안에서 열린 ‘ASIA 국제 피아노 페스티벌’때문이었다. 미국대표 강사로 초청을 받아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젊고 재능있는 음악인들을 가르쳤다.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열린 페스티벌에는 세계적 수준의 교수들이 참여하여 레슨과 마스터 클래스를 펼쳤다.
올해로 8회를 맞은 페스티벌에 한국은 물론 중국, 인도,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학생들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도 참여했다. 방학을 맞아 고국 방문을 하는 동시에 페스티벌에도 참여한 것이다.
각국에서 온 음악의 거장들이 한국 천안에 위치한 이원 문화센터에 모여 매일 음악을 가르치고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음악을 통해 느낀 점들을 나누는 경험은 특별했다. 국적을 떠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하루를 마치며 지친 상태에서도 음악이라는 주제를 놓고 밤을 지새우며 그들과 함께 나눈 대화는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대화를 통해 음악적 깊이도 함께 무르익어간 여름밤이었다.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은 교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레슨을 받으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찾고 확인했다. 또한 아시아 각국의 문화와 음악을 ‘교환 콘서트’를 통해 교류했는데, 마치 ‘음악 아시안 게임’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양음악에 대한 각 나라 학생들의 음악적 해석, 기량, 그리고 정통성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묘한 경쟁심을 느꼈다. 미국에서도 학생으로, 교수로 많은 캠프에 참여했지만 그간의 캠프에서는 경쟁하는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음악적 역량을 드높이기 위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학생들의 실력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은 탓일까? 실력 면에서 한국학생들은 유난히 빛이 났다.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우리의 아이들, 학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나는 나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마치 복싱경기에서 심판이 승리한 선수의 손을 들어주듯, 나는 우리 대한민국 학생들의 손을 들어 주고 싶었다. 공식적인 경연대회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 속의 평가는 ‘대한민국 음악의 승리’였다.
올 여름 남가주에서는 디즈니 콘서트홀, 윌셔 이벨 극장 등에서 미주 한인들의 훌륭한 공연들이 많이 개최된다. 불경기로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한인들도 이제는 콘서트 장을 찾아 음악적 향기에 한껏 취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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