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아 광고전략가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광고업계에서 쓰이던 브랜드, 브랜드 전략이라는 말이 이젠 여기저기서 쓰인다. 자기 계발처럼, 스스로를 브랜드 화시킬 줄 알아야 사회에서 좀 더 빨리, 좀 더 쉽게 인정받는다고 한다.
최근에 조앤 롤링이 가명으로 책을 펴냈다. ‘해리 포터’의 작가인 그녀는 세상에 가장 많이 알려진 여성 중에 하나다. 본명으로 책을 냈다면 그 이름 덕에 책은 순식간에 날개 돋친 듯팔려나갔을 것이다.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쓴 추리소설 ‘더 쿠쿠스 콜링’은 조앤 롤링이 진짜 작가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이미 호평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 옷, 신발, 가방을 좋아한다. 명품 가방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20,30대 여성은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어느 브랜드인지 알게 되는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힌 상품들. 불황에도 여전히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흔해진 명품 탓에 로고가 두드러지는 명품을 오히려 기피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일부 고가의 브랜드들은 의도적으로 자사 로고나 이름을 제품에 새기지 않는다. 아무런 이름이 없는 브랜드가 새로운 브랜드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로고를 없애고 상품을 팔고, 이름을 지우고 책을 출판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런 배경 없이 정정당당하게 평가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포장지가 아닌 내용물로 평가받겠다는 건 배짱 있고 떳떳한 행동이다.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규정할지는 개개인의 가치 척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회사에서 타이틀이 높아지거나, 돈이 많거나, 좋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좋은 집안 출신이라던가, 전화기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인맥이 엄청나다거나. 그 모든 것의 총체가 나라는 사람을 규정짓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모든 것을 걷어내고 내 이름 석자, 내 성격과 인격, 외모, 일하는 분야에서의 실력. 그것만 가지고 살아본다면 어떨까. 새로운 나라에 정착할 때면 내가 그 전에 쌓은 사회적 평판, 경력, 학교나 회사의 네임 밸류 등을 다 걷어내고 새로 시작해야만 했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떤 회사를 다녔는가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지금 내가 가진 성격과 태도, 그것만으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나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오랜 시간 머물렀던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나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내가 가진 장점은 무엇인지, 그런 나에 대한 상대의 평가는 어떤지 등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권위란 높은 타이틀과 많은 돈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실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와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류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수억원의 자산이 없어도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자기 자신을 잘 포장하고, 브랜드화 하여 적극적으로 자기 PR을 하는 것이 현명한 사회생활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내 진가는 나 스스로 더 잘 안다. 자리가 만든 권위 밖에 없는 사람은 그 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지만 실력과 인품을 지닌 사람은 타이틀이나 권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걸친 명품 옷은 포장지일 뿐이다. 자리가 아닌, 타이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평가받는데 불편하지 않은 삶. 그것이 자신의 가치를 포장하려는 삶보다 훨씬 더 멋진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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