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서재 딸린 집에서 살아야 하는 자이다. 목사는 집이 아니면 교회 사무실을 오피스보다는 서재로 꾸며야 할 만큼 책을 가까이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만큼 책과 목사의 만남은 운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책들을 섭렵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독가는 아니다. 매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다 읽어내야 하는 다독가가 되려면 속독을 배웠어야 하는데 필자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다 읽지 못하는 부담감이 필자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다독도 정독도 아니지만 필자만의 독서 습관이 있다. 2가진데, 하나는 한 번에 두서너 권 정도를 같이 읽어나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 번 든 책은 끝까지 읽으려는 습관이다. 전자는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싫증을 잘 느끼는 필자의 문제 있는 개인적 특성 때문에 생긴 것이며, 반면 후자는, 싫증은 느끼면서도 한 번 시도한 것은 끝까지 가야 맘이 놓이는 내 특유의 안정감 같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안에 있는 양면성이 내 독서의 습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책 구입 시 또 읽을 책 선정 시, 기왕이면 ‘좋은 책’을 만나는 게 필자에게는 훨씬 더 좋을 길일 것이다.
그럼 요사이 손에 집히는 책들은 어떤 건가? 지난 반 해 동안 읽은 책들을 돌아보았는데, 그 내용들이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좀 중후한 편이다. 주로 원리적인 책들이다. 예를 들어, <십자가를 설교하라>, <세상이 묻고 진리가 답하다>, <신학자로서의 목사, 목사로서의 신학자>, <스펄전의 설교 학교>, 그리고 <내가 자랑하는 복음> 등이다. 이 책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새로운 것’을 향한 추구라든지, 생기발랄한 ‘재미’를 주는 것들이라든지, 사적인 경험을 다루는 ‘스토리’ 위주의 글들이 아니다. 이들은 성경과 복음에 입각한 매우 고전적인 진술들에 관한 기록들이다. 목사라면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어쩌면 식상한 것들일 수 있다. 그런데도 필자 자신이 그 방향으로 계속 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한 번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는 지난 달 필자의 글에서 피력했던 “주제의 위대함”과 또 다시 연관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성경 안의 철학서인 ‘전도서’라는 책에서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할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하고 깨닫는 데 있어서도 세월의 흐름은 ‘신비한 그 무엇’을 찾게 해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갈수록 그게 아님을 깨닫는다. 이상하리만치 복음의 진리는 갈수록 더 단순해진다. 그리고 그 단순함에 인격으로 복종하게 된다. 마치 물리학자가 만물의 핵을 찾아가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더 집중하기, 복음서에서 그려진 그리스도의 자세와 삶으로 돌아하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하기, 그 모든 것의 결과로 드러난 교회의 본질을 되찾기, 이 모든 내용들을 단순하게 전하기, 바로 이런 것들이다. 기독교 신앙이란 이런 단순한 진리들에서 시작되고 발전되고 그리고 귀결되는 생명의 사건이다. 그런데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우리는 이들 ‘주변의 것들’에 더 몰입한다. 혹시 목사인 내 자신도 그 중에 한 일원을 차지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든다.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기! 교회 역사 이천 년 동안 외쳐온 주제이겠지만 오늘도 이 길로 가는 것만이 온 교회가 살 길이다. 아무쪼록 이 제안이 그 쪽 방향의 책들만 읽고 싶어 하는 한 목회자의 변이 아니길 바란다. 모든 교회들이 계속 가야하고 더 몰입해야 하는 가장 단순하며 가장 중요한 주제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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