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 탓일까. 종종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 불청객은 바쁜 일상가운데서도 불현듯 찾아온다. 자신조차 그 근원을 헤아리지 못하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혹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삶의 의문들을 피하기 위해 선택하게 되는 바쁜 일상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까.
근래 고국에선 유명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당선된 한 소설이 화제다. 대한민국에서 서른일곱의 미혼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세태 소설의 모범답안’이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현 세대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대부분의 세태 소설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사회의 치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가까운 그들, 더 솔직히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애써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은 무언가를 누군가 거침없이 헤집어 결국 추한 속내를 드러내놓고 마는 것. 기실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다 자신할 수만은 없는 불편한 현실 가운데 있기에, 독자들은 세련되게 포장된 작가의 블랙코미디에 쉬이 통쾌한 웃음을 짓지 못한다.
대도시 속 현대인들의 일과 인간관계를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이 소설을 포함해, 전문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무조건적인 낙관론’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현실’이라는 주제에 관대할 수 없을까.
돌아보면 과거 그 누가 그들이 사는 세상을 한없이 낙관하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영위했던가 싶다. 이와는 반대로, 여러 매체를 통해 동시대의 비참함을 폭로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들을 우린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예술가이건 경제인이건, 향후 나아질 무언가를 기대하는 누군가의 노력을 섣부른 일로 단정지어버릴 때가 많으며, 오히려 밝은 미래를 꿈꾸려는 누군가의 시도를 “철없다, 세상을 모른다”며 묵살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런 소설 속 주인공이 결국 세상의 실체와 맞닥뜨려져, 그의 거대함을 깨닫고 싸움의 무의미함을 자각하며 그것이 현실임을 배워 종국엔 체념함으로 한 단계 성장한다는 식의 결론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소설 속 화자의 “생에 같은 순간이 두 번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파국으로 인한 교훈도 실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스스로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후일담”이라는 주장의 당당함이 반갑고 또 고맙다.
가끔 바보처럼 동일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자책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이는 위의 얘기처럼 예행연습이 불가한 생에 완전히 ‘같은’ 실수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묵과하는 처사다. 비록 유사한 일을 겪어 그를 통한 일련의 가르침을 얻었다 해도, 매순간이 처음일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자연스레 양산하게 되는 시행착오들은 어느 정도 용납돼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리석은 후일담은 쓸데없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버리며, 잦은 체념과 후회도 날마다 긍정적으로 활용되어야 할 일상의 활력을 좀먹는다.
‘관용’은 타자에게만큼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가끔은 극한의 시도와 열심을 강요하는 세태 한가운데서 수고하는 스스로를 위로함으로 다시금 힘찬 맥박을 회복해보자. 아직 누벼야할 산천초목이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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