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신과 협회는 화병(火炳)을 한국인에게서 볼수 있는 특이한 정신질환으로 규정하고 1996년 질병목록에 ‘Hwabyung(화병)’을 새로운 항목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이병은 우리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대로 오래 전부터 익히 듣고 체험해온 병이다. 재래 동양의학에서 언제부터 인정되어 온 병명인지는 더 연구를 해야겠지만 민간에서는 보통 <화>나는 것을 잘 처리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몸이 아파 누워있거나 기운을 쓸수 없으면 화병이라고 했다. 아마 화나는 것을 지나치게 참거나, 화가 너무나서 지쳐 버렸을 때 병이 된 것이 었을 것이다. 우리 어머님의 경우, 성함이 ‘공순이’이셨는데 이름 그대로 정말 순하신 분이셨다. 때로는 극심한 두통으로 머리에 수건을 동여메시고 며칠씩 끙끙 앓으시던 기억이 나에게 지금도 선한데, 지금 심리학을 배우고 생각하니 그것이 아마 어머님이 겪으셔야 했던 어머님 나름대로의 화병의 치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현대의학에서도 정신적인 병과 신체적 질환이 연결된다는 것을 점점 더 강조하고 있다. 억울하고 서럽고, 밉고, 괴롭고 하는 등의 감정적인 갈등이 정신적 질환 또는 장애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화가 안되거나 설사를 하거나 구토가 심하거나(보통 내과에서 ‘신경성’이란 말을 쓰기도함),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공연히 차서 죽을 것 같다거나(요즈음 ‘공황증’이라고 해서 연애인들이 갑자기 공연을 취소하는 병), 심지어는 가렴증이나, 발한증(發汗症) 같은 피부질환에 속하는 병까지도 모두 감정적인 불만과 갈등으로 생길수 있다고 피부과 의사들이 말하고 있다. 장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심신(心身)의 장애를 정신의학에서 심인성(心因性)반응이라고 하는데, 화병은 바로 이와 같은 현대정신의학의 이론을 소박하나마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심리학에서 분노의 감정을 한국말로 ‘화(火)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한자풀이로 보면 분노(忿怒)는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리거나 거세게 경직되는 상태로 여자들이 역시 많이 가진다는 뜻이지만, 영어격언으로 “분노는 위험에서 한자 모자란다”(Anger is one letter short of Danger)는 표현을 충자적이지만 재미있게 분노의 위험성을 표현한 말이다. Anger(분노)에 D자만 앞에 붙이면 Danger(위험)이 된다. 분노가 얼마나 우리삶에 있어서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죄에 빠지게 하는데 가까운 것인지를 이 격언은 우리에게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화병의 원인이 되는 화가 부정적으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특히 외국어에서 유래된 강렬한 감정을 불에 비유한 표현들의 긍정적인 표현들의 예도 있다. 열렬한 애정을 <불 같은 사랑> (Fire of love, FeuerigeLiebe)이라고 한다든지, 격정적인 연설을 <불 같은 말> (FeuerigeRede)라고 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우리 말에서는 주로 ‘화가난다’, ‘울화가 치민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는 등,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표현하는 데 많이 쓰였다. 이런 분노의 위험성을 성경은 강한말로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창49:6)”,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욥기19:29)”.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