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한국인들의 음주문화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한국 사람들은 과음하는 관습이 유별스러워 주정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선원들은 저녁에 취하도록 마시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으며 이것은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도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곡주를 마신다 해도 아무도 그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는다.”비숍 여사는 한국인들의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음주문화를 예리하게 관찰했다. 여사가 관찰한 음주문화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한국서는 여전히 폭음이 흔하고 이에 대해 관대함도 여전하다. 흉악한 성범죄자가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참작해 감형을 해 주는 나라가 한국이다.
다른 나라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단기간 내에 이뤄내면서 발생한 사회적 긴장을 한국인들은 술로 풀어냈다. 별로 쉴 겨를도 없었고 쉬는 방법도 잘 모르던 시절 술은 한국인들의 거의 유일한 친교의 수단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여기에다 술자리가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화까지 합쳐지면서 한국은 모든 일의 중심에 술이 자리 잡고 있는‘주본주의’(酒本主義) 사회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음주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대함은 폭음의 기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의 한 법원은 2년 전 폭음의 기준을 정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에 따르면 남성은 잔 당 12g의 알코올이 들어 있는 술을 9잔, 여성은 5잔 이상 마시면 폭음이 된다는 것이다. 19.5도 소주를 기준으로 보면 잔 당 8g의 알코올이 들어 있으니 남성은 2병, 여성은 1병 정도 마시면 폭음이라는 말이다.
미국에서 남성은 한 자리에서 5잔, 여성은 4잔 이상 마셨을 때를 폭음으로 보고 있으며 술을 많이 마시는 프랑스조차도 남성은 60g, 여성은 36g 이상 마시면 폭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폭음이 되는 음주도 한국에서는 적당량이 된다. 최근 한 조사에서 미주한인들의 폭음 비율이 다른 민족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인정신건강협회가 미국기관의 조사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18세 이상 미주한인들의 절반 이상이 음주를 즐기며 25% 이상은 폭음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5% 내외인 일본, 필리핀, 베트남계의 폭음비율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적당한 음주는 사회생활과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너무 지나칠 때는 문제가 된다. 음주문화를 규제하려는 사회적 압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전국교통안전위원회가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혈중 알코올 0.05%로 낮출 것을 제안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식당들과 주류관련 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인사회에서도 술은 경제와 절대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술 마시는 한인들 때문에 운영되는 업소들과 업종은 부지기수이다. 그러니 음주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몰아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마시되 적당히 마실 줄 알고, 기준을 넘었다 싶으면 운전대는 절대 잡지 않는 절제력 있는 음주문화의 정착이 관건이다.‘폭음 만족’이라는 오명은 이제 그만 떨쳐버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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