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빠듯한 생활이었다. 가난한 시골의 작은 교회. 연봉이래야 수십 파운드도 채 안됐다. 그러던 어느 날 청빙의 편지가 날라들었다. 잘 알려진 대형 교회로부터 은퇴하는 목사의 후임으로 초빙을 해온 것이다.
너무나 기뻤다. 그러면서도 갈등이 생겼다. 숨 막힐 것 같은 시골에서의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 런던에서도 그 유명한 교회 목사로 가게 되다니.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을 같이해온 시골교회의 성도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던 것이다.
갈등 끝에 정든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부르심에 순종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날 고별선교와 함께 마차에 짐을 실었다. 그 주변으로 교인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떠나는 목사와 가족들을 눈물로 배웅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이들과 함께 가족처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지낸 온 세월이 얼마였던가. 짐을 다시 풀었다. 그리고 목사관으로 되돌아갔다. 가난하고 힘없는 시골교회 교인들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국의 존 파우셋 목사다. 가난한 시골교회를 섬기면서 당시 초대형 교회의 청빙을 사양했다. 그 때가 1772년이다. 그 뿐이 아니다. 신학대학 학장으로 오라는 초청도 마다했다. 평생 가난한 교인들과 같이 한 그의 삶은 결국 찬양의 시로 남게 된다.
목사가 갑자기 증발했다. 꽤 큰 교회의 목사다. 왜 갑자기 사라졌나. 들려온 소문은 그 교회보다 더 큰 교회, 그러니까 메가 처치에서 청빙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소문 끝에 목사는 사임했다. 그리고 새로 개척을 했다. 그 개척교회에 700여명이 몰렸다. 그리고 몇 주도 안 돼 이번에는 수 천 만 달러를 들여 건물을 새로 지은 교회와 합병을 한다는 말이 들린다.
대형교회라면 대형교회다. 교인수가 2000에 가까우니까. 그런 교회의 목사가 돌연 사임을 했다. 그 교회보다 교인 수가 배가 넘는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은 것이다. 그게 그런데 그렇다. 30분도 채 안 걸리는 인근에 있는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은 것이다.
안 된 것은 남겨진 교회의 교인들이다. 설교가 좋다며 그 교회를 찾아갔는데. 속된 표현을 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이다.
“왜들 그러실까. 작은 교회 목사들은 무조건 큰 교회로 가려고 하고, 큰 교회 목사들은 돈 더 주는 교회로 가려고 하고. 올 때는 은퇴 할 때까지 무릎이 닳도록 섬기겠다고 약속하고, 갈 때는 다른 곳 알아보고 다 결정 된 후에 아파트 빼듯이 한 달 전에 통보하고.”목사 된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런 고백과 함께 한 젊은 목회자가 내뱉은 한탄이다.
‘한 보좌 앞에 하나가 된 형제자매’- 이런 아름다운 교제의 모습을 보이는 교회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한인 교회의 현주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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