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미주한인들이 류현진에 점차 중독돼 가고 있다. 그가 등판하는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물론 그의 등판일정에 맞춰 개인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도 흔하다. 류현진 팬들은 지난 일요일 등판이 예정돼 있던 그가 발가락 부상으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집에 모여 경기를 보려고 계획했던 한 한인은 “마치 아침에 비가 와 소풍이 취소된 것처럼 허탈했다”고 말했다.
류현진 경기 관람과 시청은 빡빡한 이민생활에 의욕과 재미를 선사해 주는 활력제가 되고 있다. 경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미국 관중들 앞에서 힘차게 공을 뿌려대는 류현진의 모습에서 한인들은 잠시나마 일체화의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가히 ‘류현진 증후군’이라 할 만하다.
류현진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때도 ‘류현진 증후군’이라는 표현이 널리 회자됐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이면 야수들이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거나 타선이 터지지 않아 지는 일이 이어진데서 비롯된 말이다.
야구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려면 잘 던지기만 해서는 안 된다. 타자들의 공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호투는 무용지물이 되곤 한다.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의 금년 시즌 성적은 5승3패에 방어율 1.85이다. 6승을 거둔 류현진의 방어율은 2.89이다.
방어율은 커쇼가 훨씬 더 낮지만 승수는 류현진이 앞선다.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팀은 화끈한 공격으로 그를 돕고 있다. 이렇듯 투수의 승수는 타자들과의 궁합이 잘 맞을 때 쑥쑥 늘어나게 된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는 “야구는 90%가 정신력”이라고 말했다. 심리전문가들의 분석을 빌리자면 에이스가 등판하는 날에는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선수들에게 생기고 이런 강박이 어이없는 플레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야구의 에이스였던 류현진은 바로 이런 멘탈 작용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로 옮겨 온 류현진은 부정적 증후군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팀의 3 선발을 맡고 있어 에이스보다는 중압감이 덜한데다 승리를 거듭하면서 동료들 사이에도 “류가 등판하면 이긴다”는 학습효과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류현진이 던지는 볼의 스피드가 한국에서보다 빨라진 것은 한층 홀가분해진 그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류현진 증후군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완전 정반대다. 류현진의 활약에 한인들은 기분 좋아지고 그를 향한 다저스 팬들의 애정지수도 쑥쑥 올라가고 있다. 어디 미국에서 뿐인가. 류현진은 최근 한국의 한 매체가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로 꼽혔다. 김연아 같은 부동의 인기스타들을 제친 것이다.
금년 시즌 내내 류현진 증후군이 확산돼 한인들에게 엔돌핀을 넘치도록 선사해 주기를 기대한다. 류현진이 안겨주는 엔돌핀은 어떤 항우울제보다도 효과적이고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행복감이란 것도 결국은 아주 사소한 기분 좋은 일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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