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목사
완연한 봄이다. 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더운 느낌이지만 불과 보름 전에 불던 겨울의 찬바람에 비하면 성큼 다가선 봄기운을 느끼기에는 이미 충분하다. 새크라멘토 지역은 베이 지역과 달라 ‘중간’이 없다. 갑자기 따뜻해진 온도 덕에 멋모르고 튀어나오는 것들이 많다. 종류도 많은 야생짐승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온갖 색상의 들꽃들이 만발한다. 아무튼 분명한 봄이다.
봄은 이처럼 만물의 약동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 계절에는 모든 게 다 새롭다. 새로워서 너무 좋고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환해진다. 그러나 이때 일어나는 세상사들은 그런 봄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다. 한국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왜 봄만 되면 그렇게들 난리들이었는지. 한때 한국 정계와 언론에서 ‘춘투(春鬪)’라는 단어가 공용어로 정착된 적이 있었다. 대학가와 노동계의 데모가 주로 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게 그것이다.
내 기억에도 그렇다. 나의 대학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12.12 쿠데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랬으니 4년 내내 데모한 기억밖에 없다. 캠퍼스에서도 꽃가루 대신 최루탄 알러지 속에서 지내야 했다. 춘투의 시발점과 분화구 속에서 나의 청년기를 다 보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봄의 낭만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금년의 미국도 그런 식의 좋지 않은 봄맞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좀 불편하다. 본격적인 봄의 길목에 들어서면서 테러가 일어났다. 울분에 휩싸인 청년 두 명이 전혀 무방비 상태에 있는 시민들을 향해 폭탄을 터뜨렸다. 그로 인해 무고한 생명들이 죽고 어떤 집은 가족 세 명이 한꺼번에 팔다리를 잃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또 불과 며칠 뒤 텍사스 주 한 마을에서는 그보다 더 큰 대형폭파 사고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하기도 했다. T. S. 엘리엇의 시가 생각난다. “아,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그의 <황무지>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대지를 뚫고 나오는 자연의 힘찬 약동을, 성격이 전혀 다른 ‘잔인함’이라는 단어로 일거에 뒤덮어버리는 시인의 역설적 언어 사용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와는 달리 봄이 가져다주는 ‘현실적’인 잔인성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내 자신임을 본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주로 봄에 특히 내 생일이 끼어있는 4월에 일들이 일어나도 일어났다. 이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나는 설교에서 가끔 “부활절 이후를 조심하라”는 언급을 하곤 한다. 부활절은 대개 3월에 있다. 목회자의 시각에서 볼 때 대체로 연말연시는 다 좋다. 신앙의 새로운 출발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시도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절이면 그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부활절 이후부터 문제가 생긴다. 마라톤으로 치면 본론으로 진입하는 지점인데 스퍼트를 치며 속도를 더 내야할 상황에서 오히려 힘이 빠져 속도감이 떨어지는 때가 부활절 이후가 아닌가 싶다. 사도 바울이 문제 많던 고린도교회를 향해 부활에 대해 역설한 데가 고린도전서 15장이다. 그는 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 사망을 ‘삼키고 이기는 것’이 부활 아닌가? 만물은 약동하며 부활하는데, 우리는 그와는 반대로 봄이 주는 현실적 잔인성에 되레 삼킴을 당한다. 사망을 삼키고 이긴 사건이 부활인데도 말이다. 이런 부활의 참 의미를 아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부활절 이후에 오는 현실적 잔인성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활절이 봄에 있는 이유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