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연재로 “English for the Soul’을 쓰는 최정화 교수가 지난번 “Charisma/카리스마”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을 읽고 그것과 관련된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글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카리스마란 어떤 영적 힘 또는 인격으로 그런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권위를 지니게 된다. 희랍어 “Kharisma”의 뜻은 ‘호의/은혜’또는‘신의 선물’이란 뜻이다. 사람이 스스로 잘났거나 인격이 뛰어나서만 된 것이 카리스마가 아니다. 하늘의 은총으로 신의 선물로 간직하게 된 것이 카리스마다. 그런 사람은 영혼의 됨됨이가 남달리 튼실하고 강건하며, 말없는 가운데 은연중에 남들을 이끄는 영향력을 갖고 행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카리스마는 남들이 헌신하며 따르도록 유도하는 감탄할 정도의 끌어당기는 힘과 매력이며 거기에 신께서 하사하신 힘 또는 재능이 함께 하는 것임으로 인격과 신격의 공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또 막스베버(Max Weber)는 ‘경제와 사회’(Wirtshaft and Gesellshaft) 라는 책에서 세 가지 권위를 언급하면서 첫째 위치에 카리스마적 권위를 두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인격이나 가르침에 관련된 것, 전통에 의해서 행사되는 권위나 법과 제도를 통해서 세워지는 권위보다 더 파워풀하다고 말합니다.
카리스마는 최근 들어 종교계, 정치계 또는 리더쉽 트레이닝 등에서 많이 언급되어 왔습니다.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성경에 나타난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영적 지도자들에 그런 권위가 나타나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그런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는 권위가 있었다기보다도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으로 하나님의 카리스마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놀랐습니다.‘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라고 했습니다. 권세, 그리스어로 ‘엑수시아’(Exousia)가 있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있었기에 그의 가르치시는 것이 당장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 가르침에서 카리스마가 나왔던 것입니다. 교회 목사님들 가운데도 특히 카리스마를 가지고 대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카리스마적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감동되고, 정서적 연대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에서도 합리적 방식이나 설명보다도 설명보다도 카리스마를 통해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감동하여 단체가 움직이고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만듭니다. 이런 카리스마적 권위가 비판 받는 부분은 무비판적이고 복종적인, 절대적 복종이 요구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런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대체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좋은 카리스마가 바뀌어 나쁜 카리스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며 멸망케 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잘나가던 교회가 이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들도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더 심하게는 사탄에 사로잡힌 나쁜 카리스마로 최근 근현대사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히틀러 같은 인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록 영화를 통해 그가 연설하는 장면을 보면 누구나 감탄할 정도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선동했지만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나쁜 열매를 맺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얘기를 카리스마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좋은 카리스마를 사탄의 목적을 달성하는 나쁜 카리스마로 쓰라는 얘기였습니다. 첫 번째 사탄은 예수를 ‘떡으로만 사는 사람’, 떡에 매인 인생이 되는데 카리스마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예수를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고 능력행사의 장소로 씀으로 전연 다른 목적을 위하여 성전을 사용하는데 카리스마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사탄은 자기 능력을 과시하며 예수에게 가장 넓은 공간을 허락함으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는데 카리스마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 다 그 답에서 하나님을 언급하시며 하나님 말씀에 초점을 맞춤으로 승리하십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길은 능력을 행하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을 말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오늘날 주의 일꾼들에게도 사탄은 다른 형태로 하나님이 주신 좋은 카리스마를 사탄의 방법대로 나쁘게 쓰게 만들려는 유혹은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탄의 방법이 지극히 타당하고 세상에서 성공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닫고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충고의 말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고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를 기억하고 승리하는 주의 종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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