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회 설교에서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제법 고차원적인 단어 하나를 소개했다. 예술의 기능인 ‘자기 정화작용’이라는 단어다. 더 고급스럽게 보이는 외래어로는 ‘셀프 카타르시스’다. 카타르시스는 ‘카타리조’라는 헬라어 동사에서 온 것으로 ‘깨끗이 청소하다’라는 뜻이다.
어떤 장르든 그 예술의 심오함이 내 가슴을 적실 때 내 안에 묵은 때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이르는 표현이다. 좀 티내는 것 같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이런 기능을 부여해주는 예술 장르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입학하기 전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미술제에서 상도 꽤 받았다.
비록 어렸으나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이 맑아짐은 느꼈다. 몰입의 희열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청소년으로 접어들며 미술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갔다. 상당기간 고려해보던 미대 진학을 포기하게 된 것은 뜬금없는 음악의 침입 때문이었다. 내 노래를 듣던 음악 선생님이 조금만 더 공부하면 웬만한 음대는 갈 수 있을 거라는 다소 부풀려진 유혹이 나를 일시에 혼란스럽게 해버렸다. 그 일은 결국 대학 진학과는 무관한 게 되었고 오히려 음악(성악) 사랑이라는 잉여물만 남겨주었다.
그 후 여러 성악가의 노래들은 나의 ‘셀프 카타르시스’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트럼펫처럼 질러대는 오페라 가수들의 아리아들, 솜털처럼 떠다니는 독일 가곡 가수들의 열창은 내 안의 묵은 찌꺼기들을 청소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청년기는 흘러갔다.
지금은 또 달라졌다. 미술은 가끔 들리는 미술관의 명화들로 때우는 정도다. 음악? 물론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도 취사선택 수준이다. 좋아하는 가수와 음악을 편식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럼 지금은 무엇이 내 내면을 정화시켜주고 있는가? 문학이다.
사실 문학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냥 ‘글’이다. 그러니까 명품 글이나 미문(美文)들을 접하다 보면 내 속의 찌꺼기들이 씻겨 내려감을 경험한다. 그러니까 나를 정화시키는 미적, 예술적 장치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계속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술에서 시작해 음악을 거쳐 지금은 글로.
그게 어느 영역이(었)든 거기에 깊이 빠질 때는 욕심이 생겼다. 어차피 그들의 근처엔 가지도 못할 거면서 그들의 탁월한 예술적 천재성을 샘내했다. 더 발전하여 시샘은 그들을 향한 시기와 질투로, 내겐 그런 것들을 주지 않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술 먹고 당구 치며 불후의 명곡을 쉽게 만들어내는 모차르트를 독하게 질투했던 영화 ‘아마데우스’의 주연 살리에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의 이미 있는 능력과 나의 이미 있는 한계를 쉽게 받아들인다. 좋은 신앙인은 잘 받아들이는 자이다. 그렇다면 이 점에서만큼은 나도 좋은 신앙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천재성과 함께 이뤄진 작품들을 맘껏 즐기고 있다.
그리고 그 즐김에 한 몫을 하는 게 소위 ‘선물론’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들이라는 생각이다.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에 걸려있는 명화들, 가끔 가는 데이비스홀에서 연주되는 교향곡들, 그리고 탁월한 작가들의 미문들은 내 인격 청소를 돕는 하나님의 선물들인 것이다.
삶의 질은 나의 자세 여하에 달렸다. 나의 한계를 열등의 시각에서 보면 시기의 사람이 되나, 나의 한계는 나 말고 하나님이 타인에게 주신 다른 선물들로 보완되어야 하는 여유분이라고 믿으면 나는 감사의 사람이 된다. 독자들도 그랬으면 한다. 한계를 감사하라. 한계는 내 인생을 황폐하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기름지게 만드는 비료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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