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한 보건소에 식초를 이용한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으려는 여성 환자들이 모여 있다.
마리카유 마노미아이(37)는 진료실에서 나오면서 불끈 쥔 두 주먹을 공중으로치켜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녀의 몸짓을 그대로 춤사위가 됐고, 요란한 탄성에는 리듬이 실렸다. “모든 게 멀쩡하답니다. 정상이래요.” 마리카유는 자궁경부암 발병 가능성이 높은 환자였다. 그러나 이날 마라카유를 검진한보건소 간호사는 3년 전 그녀의 자궁에 자리를 잡았던 전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선포’했다. 전암세포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세포를 뜻한다. 간호사의 판정은 놀랄 만큼 간단하고 돈도 거의 들지 않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검진방식에 근거해 내려진 것이었다.
식초를 살짝 문지르면 암세포는 흰색으로 변해 비용 아주 저렴·간단한 냉동요법으로 시술 끝나 모든 과정 의사 아닌 간호사가 보건소에서 진행
자궁경부암은 검사가 쉽지 않다. 선진 개발국들의 경우 자궁경부나 질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팹스미어(pap smear), 즉 자궁경부 세포진 검사에 주로 의존하지만 개도국 여성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만큼 검사비가 저렴하지 않다.
마리카유의 자궁경부암 전암세포를 잡아낸 태국 보건소의‘ 비밀병기’는 일반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식초였다.
매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하는 여성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25만명에 달하고 이들 가운데 85%가량이 낮은 개발도상국가의 저소득자들이다. 정기적인 검사를 받기 힘들고 암세포를 초기에 발견했다 해도 제대로 된 치료를 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궁경부암은 암으로 인한 미국인 여성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팹스미어 검사가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폐암, 유방암, 대장암, 피부암에 비해 사망률이 훨씬 낮아졌다.
반면 개발도상국가들의 자궁경부암 발병률과 사망률은 10년 전 수준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자궁경부암 진단법이 바로 식초를 이용한 검사였다.
검사법은 아주 간단한다. 식초를 자궁경부에 살짝 문지르면 그것으로 끝난다.
식초에 노출된 전암세포는 흰색으로 변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위험세포를 잡아내면 코카콜라 공장에서 간단히 구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탱크에 가느다란 금속 막대기를 집어넣어 냉각시킨 다음 이것으로 흰색으로 변한 조직을 곧바로 얼려버린다.
검사와 냉동요법에 이르는 전체 시술과정은 단 한 차례 보건소를 찾는 것으로 끝난다. 시술도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비용을 극소화할 수 있다.
팹스미어를 접하기 힘든 개발도상국의 저소득층 환자들은 보건소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간단하게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전암세포, 혹은 초기 암세포를 즉석에서 꽁꽁 얼려 무력화시킬 수 있다.
식초 검사법은 2년 전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원을 받아 개도국들에 소개됐다. 현재 가나와 짐바브웨를 비롯한 20여개 국이 이 검사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VIA/cryo로 알려진 자궁경부암 검사 및 치료방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중인 국가로는 태국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VIA/cryo 식초 검사 및 냉동요법은 태국 전역의 75개 지역 가운데 29개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30~44세 연령층에 속한 800만명의 여성 ‘표적 인구’ 가운데 50만명이 최소한 한 번 이상 검사를 거쳤다.
VIA/cryo의 권위자인 태국 콘 카엔 대학의 부인과 전문의 반디트 춤워라타이 박사는 암세포는 건강한 세포에 비해 더 많은 DNA를 포함하고 있고, 이에 따라 단백질 함유량이 더 높은 반면 수분이 함유량은 적기 때문에 식초에 노출되면 흰색으로 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검사법은 팹스미어보다 정확도가 높다. 다만 잘못된 양성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암세포가 아닌데 조직이 흰색으로 변해 공연스레 자궁경부에 냉동지짐이 가해지는 사례가 더러 나온다.
냉동은 전암세포나 초기 암세포를 무력화시키는데 90% 효과를 보인다. 주된 부작용이라고 해봤자 하루이틀간 해당 부위에 열감이 느껴지는 정도다. 반면 이전의 방식인 생체검사는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지만 의료인들 모두가 혁신적인 VIA/cryo 방식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VIA/cryo 시술의 태국 내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인 로이 에트 병원의 부인학 전문의 와차라 이암 랏사미쿨 박사는“ 이 방법에 저항을 보이는 동료의사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요인이다. 일부 의료인들은 이를“ 빈민을 위한 싸구려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VIA/cryo의 창시자는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던 미국인 부인학 전문의 폴 D. 불루멘설 박사와 인도의 렌가스와미 산카라아나라이아난 박사다.
블루멘설 박사와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원 동료들은 자궁경부 병변을 쉽게 알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식초를 이용해 전암세포를 흰색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암세포를 얼리는데 자주 사용되는 액체질소 대신 어디서건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990년대에 이들이 개발한 VIA/cryo가 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저개발국 국가들의 환자들은 병이 나면 무당이나 주술사를 찾아간다. 그보다 약간 깨인 사람들은 전통 민간요법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려 든다.
이에 비해 태국인들의 교육수준은 대단히 높다. 태국의 식자율은 95%가 넘는다. 거의 모든 태국인들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얘기다. 이곳의 빈민들은 몸이 아플 경우 무당 대신 보건소를 찾는다.
게다가 태국 국왕의 아버지는 하버드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이고, 어머니는 간호사 출신이다. 여러 명의 공주 가운데 한 명은 화학분야의 전문가인 이공학 박사이고 암연구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태국에서 VIA/cryo를 개화시킨 일등공신은 현재 왕실 주치의인 코비치트 림파파욘 박사다. 뉴욕의 알바니 의과대학에서 수학한 그녀는 1999년 불루멘설 박사의 논문을 본 후 그를 직접 만나 태국에 VIA/cryo를 소개해 줄 것을 요청했고, 자신의 ‘마당발’을 이용해 보수적인 태국 왕립 산부인과대학이 팹스미어 대신 VIA/cryo를 채택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왕실을 움직여 의사들 대신 간호사들이 전암세포를 얼리는 냉동요법을 시행하도록 했다.
태국의 보건소를 운영하는 주체가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이라는 점을 고려한 파격적적인‘ 개혁조치’였다. 그 결과 숱한 태국의 여성들이 자궁경부암의 치명적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지금 전 세계는 태국에서 화려하게 꽃피운 식초 자궁경부암 검사 및 이산화탄소 냉동치료법을 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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