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한 일 앞두고 자신의 ‘감’ 무시 말아야
결혼 전 망설임을 느끼는 여성들의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갖춘 남성이었다. 그로 인해 다른 소소한 결함은 그저 약간의 기벽정도로 보였다. 그의 숨결에 묻어나는 진한 담배냄새와 허리 부근의 군살이라든지 옷차림과 외모에 대한 지나친 무신경 따위는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사소한 문제처럼 여겨졌다. 서른여덟 살의 노총각이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는 사실 역시 그리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얼마든 설명이 가능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사랑은 사람을 눈멀게 한다. 사랑이 눈을 가려 상대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결혼 여부를 결정할 때 섣부르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쉽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 상대를 이상화하는 경향 강해
결국 판단력 흐려져 중대 결격 사유도 덮고 넘어가
‘회의감’주변에 털어놓고 불길한 것인지 짚어보아야
진시 헉(51)이 그랬다. 1988년 결혼한 진시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노모에 얹혀 지내는 뚱뚱하고 지저분한 남자에게 왜 마음이 끌렸는지 모른다”며 “그는 결혼을 주저하게끔 만드는 모든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지방법원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진시 헉은 “나 역시 마음 깊숙한 곳에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결혼을 해서 아기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며 “사실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망설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던 첫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그래도 그녀의 결혼은 남편의 타계로 이혼이 아닌 사별로 끝났다.
심리학자들은 1세기 이상 인간의 의사 결정에 관해 연구해 왔다. 개인의 편견이라든지 감정과 성격이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내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학자들은 투자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실험대상에게 가상적인 도덕적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 후 그들의 뇌를 단층 촬영하는 방법도 사용됐다.
연구진은 또 순간적인 판단과 장고를 거친 신중한 결정의 정확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무의식적인 본능이 의사 결정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측정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결혼 결정에 버금갈 만한 외부조건이나 자극을 제공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에는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른다. 잘못된 선택은 엄청난 후유증을 몰아온다. 게다가 일단 실행에 옮기게 되면 원상태로 되돌리기 힘들다. 이혼은 말끔한 원상복귀와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일자리를 받아들일 것인지 PC에서 맥으로 바꿀 것인지 결정하는 데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 남자, 혹은 이 여자와 결혼행진을 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늦기 전에 갈라서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심리학 교수인 J. 프랭크 예이츠 박사는 인생사와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면 최소한 10개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려사항과 선결사항이 장난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을 말끔히 처리해야만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진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일반인들은 의사결정 과학의 전문가가 아니다.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주관적인 소신과 변덕, 그리고 ‘감’에 의지해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본능적인 ‘감’이 얼마나 건설적이냐 하는 점이다. 결혼 전의 망설임도 본능적인 느낌, 즉 감에 속한다.
UCLA의 심리학 박사과정 학생인 저스틴 레이브너는 최근 ‘가정심리학 저널’에 게재된 보고서에서 “결혼 전 막판 망설임은 대단히 흔한 일”이라고 전제하고 “이런 느낌을 가졌던 여성은 높은 이혼율을 보였으며 성별에 관계없이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 역시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저감을 느낀다. 워낙 중요한 일이라 위험부담이 크고 그만큼 확신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주저감이나 회의감이 든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같은 느낌을 주는 근원적인 이유다.
스토니 브룩 대학의 심리학자인 아더 아론은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이혼자들이 결혼을 할 당시 주저감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혼전의 회의감이 이혼 확률을 높이기는 하지만 둘 사이에 절대적인 상관관계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대방 부모와 코드가 맞지 않는 것도 처음에는 사소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예컨대 아기를 갖느냐 마느냐로 심각한 마찰을 빚을 수 있다.
이렇게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할 ‘불안요소’들을 그냥 지나치게 되는 주된 이유는 결혼에 수반되는 외부압박이다.
‘틀린 남자를 피하는 법’이라는 책을 써낸 앤 밀포드는 주례 앞에 서있으면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는 2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 대부분으로부터 “결혼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들었지만 큰일을 치를 때 으레 느끼는 조바심이거니 생각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밀포드는 많은 여성들은 그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혼을 강행했다며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부분적인 이유라고 지적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상대를 이상화하려는 강한 심리적 성향을 보이는 것도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미주리 주립대의 산드라 머레이 교수는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 남자는 정말 다정스러워”라든지 “그 사람이 우울한 이유는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남녀는 파트너의 ‘중대한 결격사유’를 애써 덮으려든다고 말했다.
회의감은 증발하지 않는다. 다만 억눌려질 뿐이다. 그리고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 고개를 치켜들기 마련이다.
‘행복의 신화’의 저자인 UC리버사이드의 심리학자 손자 류보미르스키는 결혼 준비의 열기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을 찾아 자신이 느끼는 주저감과 회의감이 불길한 것인지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의 예이츠 박사는 결혼을 앞두고 자신이 느끼는 망설임을 글로 써보면 그저 막연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분명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진시 헉은 “결혼 당시 난 내 마음속의 경고음을 무시하고 묵살했다”며 “최악의 상황은 내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후회와 함께 시작됐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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