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뉴욕 주 베이쇼어에서 한 친지에게 납치되어 사슬에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가 16일 만에 구출되었던 케이티 비어스(30)가 20년의 침묵을 깨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 성적으로 학대당했던 어린 시절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 당시 납치사건을 취재 보도했던 CBS-TV 기자와 공동집필한“묻혀진 기억:케이티 비어스의 스토리”는 그녀의 구출 20주년을 맞은 이번 주 선보였다.
1993년 뉴욕서 감금 16일 만에 구출된 케이티 비어스
당시 취재기자와 사건전모 담아 공동집필한 신간 출판
구출된 후 양부모 밑에서 자라며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비즈니스 전공을 살려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그래도 그 고통스러웠던 사건을 계기로 자신은 새로운 생활을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종된 후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어린 케이티의 생활은 납치감금 못지않게 참혹한 것이었다.
“열 살 때부터 책을 쓰고 싶었다”는 비어스는 “아, 네가 바로 그 사이코 집의 벽 사이에 갇혀있었던 아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루머가 두려웠다”면서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에 계속 울었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10세 생일 이틀 전이던 1992년 12월28일, 비어스는 생일 선물을 주겠다는 건설업자 존 에스포지토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케이티가 ‘빅 존’이라고 불렀던 에스포지토는 가족들이 알던 아저씨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자 에스포지토는 자신의 차고 아래 지하벙커에 비어스를 감금했다. 6 x 7 피트 크기의 콘크리트 벙커는 200 파운드 콘크리트 문으로 밀폐되어 있었다.
그는 케이티를 그곳에 16일 동안 감금했다. 목에 쇠사슬을 묶은 채 바닥에 고정시킨 마치 관 같은 나무 박스 안에 가두고 잠그기도 했다. 방구석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만이 유일하게 빛과 소리를 내는 요소였다.
후에 에스포지토는 법정에서 그 지하 벙커는 자신이 케이티를 위해 특별히 지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번 책에서 비어스는 에스포지토가 벙커를 짓던 현장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서술하고 있다. 자신의 감방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어린 케이티는 짓고 있는 벙커 안팎을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다.
이번 신간에서 비어스는 감금 당시 에스포지토에게 수차례 강간을 당했던 사실도 털어 놓았다. 당시 재판에선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에스포지토는 비어스 납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케이티의 법정 증언을 면해주는 대신 성폭행 혐의는 제외시킨다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15년에서 종신형을 받은 에스포지토는 현재 웨체스터 카운티 싱싱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비어스 실종을 수사 중이던 경찰은 에스포지토의 집을 찾아와 수색했으나 어떤 비명도 케이티가 관처럼 생긴 박스 안에 감금된 채 뚜껑을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에스포지토가 숨겨두었던 녹음기를 후에 벙커에서 찾아냈는데 거기엔 “제발, 나 좀 내보내 주세요”라고 울부짖는 케이티의 비명이 녹음되어 있었다.
납치 이전부터 어린 케이티의 생활은 비참했다. 엄마 마릴린 비어스는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없었고. 아빠는 출생 전부터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케이티는 대모인 린다 잉길러리의 집에서 살았다. 이가 들끓는 머리에 늘 맨발인 4살의 케이티를 대모는 마치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어린 케이티는 빨래를 비롯해 온갖 집안일에만 시달린 게 아니었다. 린다의 남편인 살바토레 잉길러리는 어린 소녀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후에 아동 성폭행 혐의로 유죄평결을 받은 살바토레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 사망했다.
감금된 지 16일 만에 구출된 비어스는 그 후 롱아일랜드 이스트 햄턴의 포스터 패밀리와 함께 살았다. 포스터 홈의 양부모는 미디어와 사람들의 호기심으로부터 그녀를 철저하게 보호했고 끔찍하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비어스는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정상적인 삶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 데릭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내 이름을 듣고 구글을 통해 나의 지난날을 다 알게 되었지만 내겐 아무 말도 안했지요. 그러나 나는 데릭을 데리고 내가 감금되어 있던 곳을 찾아 갔었습니다. 그에게 내가 누구인지 오늘의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있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지난날과 거의 단절하고 살지만 가끔 엄마와는 결혼, 출산, 책 출간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연락을 하고 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비어스는 당시의 납치가 자신의 삶을 구해냈다고 인정한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는 그는 대학은커녕 고교도 졸업 못한 채 비참한 바닥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어스는 불우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강연가가 되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든 간에 노력하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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