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학생 아파트의 한달 렌트비는 99불이었다. 남편이 학교에서 꼭 필요하다고 전자계산기를 사는데 한달 렌트비의 한 배 반이나 되는 거금을 주길래 나는 남편이 공부덕분에 나중에 자식들에게 대대로 물려줄만한 가보를 장만하는 줄 알았다. 거리를 다니다보면 장사를 접는다고,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몽땅 팔겠다는 가구 세일 선전을 종종 본다. 일생동안 우리는 몇개의 소파와 몇개의 침대를 소비할까?
오랫동안 연결을 안해서 못 쓰다가 드디어 연결해 잘 쓰고 있는 오디오세트도 일생을 통해 단 한번 큰 맘 먹고 장만한 가보(?) 쯤 된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아마 자동차는 조금 더 많이 소비 한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달래가며 타도 어느 순간엔 결국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것이 자동차였으니.. 기계가 싫어서 사진기 만지는 것도 싫어하는데 할수 없이 컴퓨터를 써서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도 어느 새 15년이다.
그 때 굳은 결심으로 심호흡하고 가보인줄 알고 장만했던 랩탑이 얼마나 고물이 됐는지 아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바꾸라고, 이젠 값도 얼마 안된다고 신문광고를 갖고와 보여주기까지 한다. 값도 값이지만 컴퓨터를 바꾸려면 그 속에 켜켜히 감춰진 내용물까지도 일일히 바꿔 넣어야 하는 것이 난감해 엄두가 안난다. 아들이 자기가 해주겠노라고 자청을 하는데도 번거롭고 겁난다. 한번 배워두면 편리한 점이 많은 걸 왜 모르나.
그러나 그 편리한 값 대신에 또 그만한 불편함의 값을 치룬다. 컴퓨터가 서투르다보니 파일 정리 하는 것도 만만찮아서 어딘가 예전의 글이나 그림이 숨겨져있는 건 분명한데 도저히 내 힘으로 찾아지지 않는 것도 있다. 트럭 몇 대분의 잡동사니라도 내 눈 앞에 쌓여있는 거라면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속담을 뇌이고 또 뇌이면서 하나 하나 뒤적여 볼 수도 있으련만. 남들이 너도 나도 쓴다니까 나도 아이패드와 스마트 폰을 장만했더니 나는 원고 쓰고 이메일 보내는 것 외에는 무슨 소용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또 다시 새모델이 나오고, 그러면 젊은 이들은 그걸로 바꾸지 못해 안달한다.
연필 한자루 사면 몽당연필이 되도록 쓰고 옷한벌을 사면 빵꾸가 나야 버리던 구세대의 사람으로는 이 스피드가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최근 컴퓨터가 고장나서 그림 이미지들이 몇개 없어졌다. 대부분 내 손을 떠난 것들이라 그냥 잊어버리려 해도 맘이 아른하른하고 쌉쌀한데 마침 그림을 산 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어찌 된게 나는 늘 큰 그림이 좋아 큰 그림을 많이 그려왔다.
큰 그림은 개인집에서 소화하기는 어려워 그리면서도 늘 버거웠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면 이 애들이 엄마 그림 때문에 부담될까봐 더 신경이 쓰였었기 때문에 그 그림들이 팔렸을 때 마치 노처녀 딸을 치워버린듯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미지를 잃어버린 그림들을 보러오라니까 어찌나 반갑고 다행이다 싶은지 사진기 들고 내 그림사진 찍으려는 목적으로 갔다.
일생동안 그저 그만그만하게 사는 이들만 알았지 진짜 부자를 본적이 없어서 내게는 파티라기보다는 무슨 웨딩같은, 일생에 한두번 있는 잔치처럼 으리으리했다. 크리스마스 연극에 나옴직한 옛 의상을 차려입고 입구에 서서 캐롤을 부르는 남녀 네명, 코트 받아챙기는 사람, 댓명의 요리사, 댓명의 웨이터, 서너명의 바텐더, 서너명의 베이비씨터, 쇼핑센터의 것처럼 높다랗고 화려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 사방에 걸려있는 그림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앙의 좋은 자리에 내 그림을 걸어놔 줘서 고맙고 반가웠다. 부자란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는 좋은 자리인가 보다. 거기에다 내가 저질러는 놨으되 감당 할 길은 없는 그림까지도 대신 감당해 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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