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에게 좋은 신학은 그의 삶과 사역에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그래서도 목사들은 하룻밤 자고 났더니 인생이 바뀌더라는 식의 얄팍한 주제들을 다루는 책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중후한 책을 더 가까이할 필요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필요성을 알면서도 요사이 목회자들의 손에 잡히는 책들은 중후한 책보다는 얄팍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좋은 신학자들을 만나야 한다. 공부하던 신학교에서 만나면 금상첨화고, 아니라면 책을 통해서라도 그들을 만나야 한다. 특히 목회자는 ‘현실’보다는 ‘원리’를 제공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의 프레임을 설정해주는 좋은 신학적 양서를 만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나도 목회자이기 때문에 내 나름의 신학적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게도 그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기여를 해 준 몇몇의 신학자들이 있다. 오늘은 그 중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오스카 쿨만이라는 분이다.
그는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20세기의 한 세기 전체 동안 성서학을 가르쳤던 신약학자다.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책은 ‘그리스도와 시간’이라는 책이다. 그는 거기에서 성경 속의 구원역사를 ‘이미’와 ‘아직’이라는 간결한 용어로 정리시켜 주었다. ‘
이미’라는 것은 이미 도착한 구원, 이미 실현된 종말을 의미한다. ‘아직’이란,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종말과 아직 성취되지 않은 구원을 뜻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그런 식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뤄졌(진)다는 의미다.
물론 그의 신학사상 전체가 다 동의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구원 역사의 과정을 이토록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준 그가 난 그토록 고마울 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2000년 전 과거의 구원 사건이다(‘이미’). 그리스도의 재림은 언제일진 모르지만 우리에겐 앞에 남겨진 미래적 구원 사건이다(‘아직’). 그렇다면 나와 우리 모두는 그 두 개의 시간과 사건 ‘사이’에 끼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개념을 배운 후에 나의 경우 얼마나 많은 신앙의 수수께끼들이 일거에 풀렸는지 모른다. 한 예를 들면,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참 자유와 구원을 얻고 경험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보면 그렇지 못한 나를 보게 된다.
여전히 죄와 씨름해야 한다. 예수 믿기 이전과 흡사한 죄로 인한 갈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틈만 나면 목사까지 된 나를 쉽게 해체시켜버리는 죄의 흔적들로 심한 마음고생을 한다. 그런데 쿨만의 ‘이미’와 ‘아직’이 그런 나를 도와주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지금 ‘이미’ 얻은 구원(십자가를 통한)과 ‘아직’ 이뤄지지 않은 구원(재림을 통해)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이구나,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을 소유하게 된 나는 어떠해야 할까? 어떤 태도로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원리는 반드시 실제를 형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잘 돌아보기’와 ‘잘 내다보기’다. 이미 내 안에 이루어진 구원의 사건은 과거형이다. 인생의 과거형은 다 돌아봄의 대상이다.
반면 내 인생의 미래형은 내다보기 위해 주어졌다. 단 차이라면 한 방향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것, 다른 방향은 아직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현재 속의 나는 그 두 양쪽을 그런 식으로 잘 돌아보고 잘 내다보아야 한다.
사실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지금이 현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현재는 이미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그토록 짧은 ‘현재’라는 시간을 ‘찰나’라는 기막힌 단어로 부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서 있다. 그럼 왜 서 있는가? ‘이미’를 잘 돌아보고 ‘아직’을 잘 내다보라는 이유 때문이다.
연말연시라고 부르는 시점에 와있다. 사람은 많은 평범한 ‘날(day)’의 흐름보다는 그것이 365개나 모여 있는 ‘년(year)’의 흐름에 더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 민감성이 좀 우습게 보이긴 하다.
하지만 한 해가 ‘이미‘와 함께 떠나가고 다른 한 해가 ‘아직‘과 함께 임박해오는 이 연말연시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겼다. 잘 돌아보고 잘 내다보는 일이다. 신앙인들은 특별히 더 그렇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돌아봄과 내다봄의 일을 신앙적 차원에서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잘 돌아보고 잘 내다보는 우리의 연말연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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