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흔히연기라고 한다. (음악으로 말하면 연주라고나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인생… 명연기이며 명연주일까? 한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누구나 명연기… 감동의 연주를 펼치고 싶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명연기이며 위대한 연주(Great Performance )일까…
얼마전 친구의 권고로 오토 클렘펠러 지휘의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 연주(베토벤의 교향곡 5번)를 들은 적이 있었다. 클렘펠러는 독일계 유태인 지휘자로서 전매특허인 슬로우 템포로 유명한 지휘자였다.
2008년, 독일 그라마폰 음반회사는 세계 20대 오케스트라 중 1위로 네델란드 로열 콘서트헤보우를 뽑은 바 있었다. 2위는 독일 베를린필이었고, 3위 비인 필, 4위 런던 필, 5위 시카고 심포니 등의 순서였다. 널리 알려진 뉴욕 필은 12위로 밀렸고, 베이지역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그 뒤를 이어 13위에 랭크되었다.
위대한 연주란 그라마 폰이 선정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라마 폰은 교향악단의 순위는 매길 수 있었지만 위대한 연주, 즉 감동적인 연주의 순위는 매기지 못했다. 그것은 그라마 폰이 매긴 것은 결국 (오케스트라의)실적이었지 감동의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라마폰은 실적(?)면에서 뮌헨 바바리안 라디오(심포니)를 6위에 랭크하고있었다. 그러나 감동의 측면에서, 바바리안이야말로 그 영향력이 세계적인 악단 중의 하나이다. 친구가 권한 음반에서도 클렘펠러의 지휘는 역시 느렸다.
문제는 교향악단의 반응. 상임 지휘자도 아니고 객원 지휘자에게 이같은 절대 복종이 과연 이루질 수 있었을까? 클렘펠러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놀듯 자신만의 스타일로 베토벤을 농락(?)하고 있었다.
보수층의 청중이 듣는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어떤 의미에서 정말 예외적인 연주의 표본이었다. 지휘자 지망생이라면 전혀 들을 필요가 없는그런 연주… 문제는 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그같은 사도(邪道)의 클렘펠러에 대해 그같은 절대 복종의 사운드를 내게 됐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아마도 교과서에는 없는 연주… 즉 어쩌면 다시쓰는 베토벤… 클렘펠러 속에 녹아진 베토벤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흉내만 내는 연주란 아무리 위대해도 결국은 죽은 연주일 뿐이다. 결론은 언제나 같다. 베토벤이 죽어야 베토벤이 살 수 있다는 것… 다시 쓰는 베토벤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세모.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착찹하다. 허둥대며 살아온 한 해… 손에는 여전히 빈손이다. 버리지 않고 채울 수 있는 것은 없다지만 과연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무엇을 버리고 또 무엇을 얻으려고 노력했을까?
궂은 날… 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천둥 번개… 두렵고 싫지만 그러나 소나기만큼 또한 영혼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삶을 사노라면 가끔 우리는 正道(정도)보다는 소나기(장애)를 피해 편한 길만을 골라 갈 때가 많다.
그러나 버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인생의 명연주가 늘 폭풍우 속에서 이루어짐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세모에 들어본 Great Performance… 참으로 유니크한 연주였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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