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구심점에서 결혼·장례 주재자로 격하
▶ 경제발전 따른 세속화로‘불교국가’불심 시들
타이의 왓 체디 루앙 사원에서 젊은 승려들이 저녁 촛불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타이 북부 반 파 치 지방의 승려들은 이제 더 이상 불교의 중요 의식의 하나인 새벽 탁발을 하지 않는다. 대신 사원의 주지가 동네 식당에 전화하여 음식을 배달시킨다.“난 거의 나가지를 않습니다”라고 주지인 프라 니판 마라위차요 승려는 말한다(프라는 승려를 칭하는 타이 경어다). 한 때 번성했던 사원엔 이제 승려라고는 그를 포함한 2명뿐이다. “가치관도 세월 따라 변했습니다”
화려한 세태 하이스피드 아이폰 문화에 밀려난‘명상생활’
지원 넘치던 수련승도 줄어 가난한 이웃 미얀마에서 공수
불교사원의 금빛 지붕은 논과 팜 트리처럼 타이 풍경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 왔다. 불교의 사원들은 한때 마을 생활의 중심이었다. 회의 장소도 되었고, 게스트 하우스 역할도 했으며 명실공이 커뮤니티 센터였다. 그러나 이제 상당수 사원들은 승려 부족과 사회의 점진적 세속화와 함께 소외되면서 과거의 상징물처럼 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소비주의가 타이의 종교가 되었다”고 타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승려의 한명인 프라 파이산 비살로는 말한다. “과거엔 모든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사원을 찾았지만 지금은 쇼핑몰로 가고 있습니다”
승려의 명상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아이폰 세대들은 별로 끌리지 않는다. 승려와 수련승들의 숫자는 인구대비 지난 30년간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1980년엔 인구 1,000명당 11명이었는데 지금은 5명꼴이다. (타이는 국민의 95% 이상이 불교도인 불교의 나라로 꼽혀왔다. 승려의 사회적 지위도 어느 나라에서보다 높았다. 전에는 국왕을 비롯하여 남자라면 일생에 적어도 한번은 절에 들어가 삭발하고 3개월 정도의 수도과정을 지내고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른 새벽이면 법복을 걸친 탁발 승려들이 사원을 나서 행렬을 시작하고 신도들은 정성스럽게 이들에게 공양을 바치는 것은 타이 고유의 아침풍경 중 하나였다)
아직 문을 닫은 사원들은 드물지만 많은 지역에서 승려부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곳 북부 타이 지역에선 주지들이 국경 넘어 미얀마에서 수련승을 모집해오기도 한다. 가난한 미얀마 사원에는 수련승들이 넘쳐나가 때문이다.
현대화 과정을 통해 종교가 약화되면서 점차 세속화되는 것은 이미 많은 사회들이 목격해온 변화다. 타이의 경우 변화의 압축적인 시간 프레임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국가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함께 그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단기간에 불교승려들은 각 지역의 중요한 정신적 종교적 업무를 수행하던 도덕적 지도자와 스승인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에서 결혼, 장례 등 의식만을 주재하는 사람으로 격하되어 버렸다.
타이의 불교총협회 부 책임자인 프라 아닐 사키아는 타이 불교는 빠르게 변하는 타이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도록 “새로운 포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요즘 사람들은 하이스피드를 좋아하지요. 전에는 없었던 인스턴트 국수를 지금은 누구나 먹지 않습니까? 우리도 불교를 쉽게 가르쳐야 합니다. 인스턴트 국수처럼 소화하기 쉽게 말입니다”
그는 스트레스 가득한 도시 생활의 위안처로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불교를 생활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의 가르침인 ‘다르마’가 사원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 그는 “백화점에서도, 또 인터넷에서도 다르마를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파라 파이산은 ‘패스트푸드 부디즘’에 대해 별로 낙관적이 아니다. 많은 부유층 타이인들의 명상이 늘어나고 불교서적 판매가 증가되고 있긴 하지만 현대생활과 불교는 기본적으로 양립불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삶은 전통적 불교 금욕주의의 구현이다. 외딴 곳 호수의 수상가옥에서 살고 있다. 아무 가구 없이 책만 가득한 곳 새벽 6시 예불을 드리고 난 직후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그의 처소주변은 아직도 아침 안개에 싸여 있었다.
그는 승려들의 양적 질적 쇠퇴를 우려했다. 젊은이들이 도시의 빠르고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것이 주요 이유다. 전에는 농촌지역 곳곳에서 폭넓게 행해지던 사원교육이 이젠 정부의 세속적 일반 교육으로 완전히 대치되었다.
정부통계는 지난해 전국 승려의 숫자를 29만명으로 집계했지만 프란 파이산은 7만명이 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승려관련 늘어난 스캔들도 쇠퇴의 원인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원에서 술에 취한 승려들이 여자들과 희롱하거나 포르노를 보는 동영상들이 유포되기도 했으며 신도들의 기부금을 횡령한 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인류학 교수 윌리엄 클라우스너는 그의 저서 ‘변화 속의 타이 문화’에서 불교승려들의 영향력 쇠퇴를 “드라마틱한 변천”이라고 표현하며 한때 커뮤니티의 주요지도자들이었던 승려들이 이젠 한 사원에 2~3명 남은 것이 보통이며 그들 대부분도 늙고 병든 노인들“이라고 전하고 있다.
사원의 재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평일의 사원은 신도들이 찾아오지 않아 텅 비어 있지만 대신 부유해진 사람들의 물질적 기부는 늘어나 돈은 넉넉하다. 젊은 남자들의 전통적 수련승 과정이 아주 없어진 것도 아니다. 이전엔 최소 몇 달 과정으로 몸과 마음을 수련했지만 요즘은 1주일 코스로 단시간 대량 배출이 인기를 끌어 이 같은 수련승려들을 뜻하는 “공장 승려들”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프라 니판은 요즘 자신이 하는 일은 장례와 결혼 주재, 혹은 새집 축복 등이 전부라면서 “문제가 생기면 예전처럼 사원을 찾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 전화를 하는 게 요즘 사람들이지요”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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