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름다운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꽃이라고해서 누구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없는 꽃… 진심이 담겨지지 않은 꽃을 선물받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꽃은 아름다움의 질료일 뿐 그 자체가 바로 아름다움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음악이라고해서 모두가 즐겨하고 누구나 감동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음악일수록 오히려 표면적인 음악… 즉 외형적인 아름다움만 가득할 뿐일 수도 있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음악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울리는 꽹과리 일 뿐이다. 한국에 있을 때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를 잘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곡이 화려하긴 하지만 어쩐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꽃의 왈츠’는 오히려 먼 훗날… 캘리포니아에 와서야 비로서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 작품이었다.
태평양 해변가… 낙조를 바라보며 듣는 ‘비창교향곡’은 (한국의)복잡한 시내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비창’과는 비할바가 아니다. 사시사철 꽃 피는 공원… 강열한 태양의 캘리포니아에서 듣는 ‘꽃의 왈츠’는 우중충한 음악다방에서 울려퍼지는 ‘꽃의 왈츠’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럼에도 한국에 있을 때 단짝 친구는 ‘꽃의 왈츠’를 무척 좋아했었다. 음악에 대한 조예는 별로였지만 모차르트와 차이코프스 키 등을 좋아했던 친구는 감성이 건전한 친구였다.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고, 좋은 음악에 대한 감각도 예리해서 늘 ‘꽃의 왈츠’같은 천재적인(?) 작품만을 먼저 골라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했다.
이 아름답고 귀족적인 음악을 그저 우아함만 가득 뽐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소 냉소적인 음악감상가였던 것 같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 2부에 나오는 곡으로, 모음곡으로는 8번째에 속하는 곡이다.
부드러운 하프(선율)를 바닥에 깔고 왈츠가 시작되는데, 차이코프스키가 이 곡을 내 놓을 당시 서유럽쪽에선 이같은 화성을 낼 수 있었던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개성적이고 화사하며 산뜻한 주제는 친근하면서도 귀족적이다.
마치 왕자와 공주님이 화려한 월츠는 추는 듯한 달콤함이라고나할까, 특히 눈부시게 작렬하는 화려한 코다(끝부분)는 이곡을 월츠의 대명사로 만들고 있다.
월츠란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을 말한다.
외톨박이가 추는 춤은 고고 등 자위적인 춤이지 월츠가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두 사람이 함께 느끼는 것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둘이 걷는 오솔길… 석양… 함께 가는 음악회… 혼자만 느끼는 아름다움… 대상없는 음악이란 없다.
돌이켜보면, 산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세레나데… 무도회의 권유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꽃의 왈츠’를 좋아했던 친구는 인생에서의 춤을 아는 녀석이었다. 좋아하는 대상이 확실했고, 인생의 설계도가 확실한 녀석이었다. 친구는 보폭 크고 결단성있게 인생이란 왈츠를 아름답게 춤추어 나갔다.
반면 나는 어쩐지 인생에 대한 서먹한 춤만을 되풀이해 왔던 듯 싶다. 캘리포니아에 와서야 비로서 정상적인 삶… 음악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꽃의 왈츠’를 들을 때 마다 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왜 사람들은 왈츠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또 사랑하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이 갈 수 없는 나라… 놓쳐버린 아쉬움… 희망과 회한… 아픔의 편린들이 바로 음악일지도 모른다. 음악(클래식)이 때때로 칙칙하게 들려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겠지만 음악의 승리는 늘 슬픔 속에서도 하나의 춤으로 승화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위대한 음악은 모두 운명과의 춤이다. 버려진 순간, 외줄타기의 공포 속에서도 춤 출 줄 아는 여유… 그 너그러움이 바로 음악이 말하는 진정한 왈츠는 아닐까? 이번 연말에도 각종 ‘호두까기 인형’의 공연이 여기저기서 이어질 것이다.
특별하게도 ‘꽃의 왈츠’를 들으며 미소짓던… 친구의 얼굴이 그리워진다. 올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생’과 ‘왈츠’를 생각해보는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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