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영·이태엽씨
“가족·이웃들 희생”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러시아 사 할린 지역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한 인 학살에 대한 구체적 정황증언이 확보돼 일본군의 한인 학살 실체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한국 국가기록원은 제2차 세계대 전 직후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한인 학살에 대한 기록을 추적한 결과 당시 이 지역 에 살던 2명으로부터 구체적 정황 증언을 확보했다고 한국시간 13일 밝혔다.
기존에는‘ 일본군이 누군가를 죽 였다더라’ 하는 막연한 증언이 대부 분으로, 이번처럼 목격자로부터 구 체적인 장소와 날짜, 정황을 직접 들은 2차 증언이 확보된 것은 처음 이라고 국가기록원은 밝혔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사할린에 사는 황순영(78·여)씨는 11세이던 1945년 여름 에스토루에 살던 이모 부와 이모부의 동생이 일본군에 의 해 학살됐다는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해들었다고 증언했다. 황씨는 “이모부 내외가 에스토루 로 들어가 농사짓고 살고 있었는데, 일본군들이 전쟁에서 진 1945년 8 월20일께 이모부와 이모부의 동생 을 끌어내 뾰족한 나뭇가지로 막 찔 러 죽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황씨는“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모 는 3살짜리 아들과 숨어서 그 상황 을 목격했고, 나중에는 땅을 파 굴 안에 숨어있었다고 한다"며 “전쟁 이 끝난 뒤 이모는 땅에 묻힌 남편 과 시동생을 파내 초상을 치렀는데, 그때 어머니가 다녀오셨다"고 덧붙 였다.
1945년 8월 당시 5세였던 이태엽 (72)씨는 나중에 이웃으로부터 전 해 들은 또 다른 이웃집 부자의 사 연을 증언했다. 사
할린에 머무는 이씨는 “이웃에 살았던 최씨가 얘기해줬는데, 에스 토루에서 강씨와 부인, 아들 둘로 구 성된 일가족 중 강씨와 큰 아들이 일본군에 살해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군이 소련군과 싸울 죽창을 만들라고 해 최씨는 만들러 갔지만, 강씨는 ‘다리가 불편한 큰 아들을 돌봐야 해 못 간다’고 하다 가 일본군의 칼에 찔려 죽었고, 큰 아들은 거기에 항의하다 함께 죽음 을 맞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은 2차 대전 전 에스 토루 지역에 한인이 1만229명 살았 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 지 않아 50%가량 감소했다는 1946 년 러시아 정부 보고서 초안을 러시 아 사할린 국립문서보존소에서 입 수해 지난 8월 공개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 보고서에서 한인 인구가 5,000명 가까이 줄어 든 이유로 피난이나 귀환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학살을 지목 했다.
이 같은 물증에 이어 관련 증언 까지 확보됨에 따라 에스토루 지역 에서 이뤄진 일본군의 한인 학살 실 체가 더욱 분명해지게 된 것으로 국 가기록원은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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