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는 매년 남녀선교회가 수련회를 간다. 여자 회원들은 봄에, 남자 회원들은 가을에 간다. 두 그룹 다 레이크타호에 있는 장로교 수양관 내의 레이크뷰 센터를 빌려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며 신앙적 교제를 나눈다.
레이크타호 호수와 산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갖는 개인 묵상, 함께 하는 예배, 삶의 나눔, 스스로 만든 음식 먹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에는 잘 몰랐던 형제자매들끼리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며 깔깔대는 그 기분이란 정말 최고의 것이다.
이번 남선교회 수련회는 지난 10월 셋째 주 주말에 있었다. 이번 수련회에는 다른 수련회와 다른 몇 가지 특색을 지녔다.
첫 번째 특색은 초청 강사를 모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일단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다. 경기 불황 탓으로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은 이 시점에 경비를 절약해보려는 일환이었다. 더 긍정적인 이유로는 앉아서 강의를 듣는 시간에 밀착된 성도의 교제를 더 맘껏 가져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목표는 둘 다 잘 맞아떨어졌다.
두 번째 특색은 어찌 됐든 웃을 일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거였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재미도 있으면서 창조적인 것들로 짜여졌다.
첫째 날 저녁에는 퀴즈 쇼를 했다. 미국식으로 하면 저파디(jeopardy)고, 한국식으로는 추억의 장학퀴즈 같은 거였다. 성경, 상식, 지리, 예술, 스포츠, 그리고 넌센스로 항목을 나눠 각 항목마다 1점부터 5점까지 문제를 낸다. 1점짜리를 맞추면 1점, 5점짜리를 맞추면 5점이 가산된다. 물론 틀리면 그만큼 점수가 깎인다. 팀별로 경쟁했는데, 팀의 단합을 위해서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쇼를 진행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해프닝들로 인해 배꼽잡고 웃을 일도 많았다.
하나 더 있다. 이튿날 낮의 요리 시간이었다. 전날 퀴즈 쇼에서 정해진 순위에 따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음식 재료를 선택한다. 1위 팀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번 1위 팀이 선택한 요리 재료는 생태였다. 그러니까 그 팀은 생태찌개를 끓여야 한다. 그런 식으로 진행해 2위 팀은 닭도리탕, 3위 팀은 김치찌개, 4위 팀은 된장찌개, 5위 팀은 꽃게탕이었다.
1위 팀에게는 요리 재료 선택에만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보조 재료인, 두부, 감자, 무, 이런 것들도 먼저 선택할 수 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서로 궁합이 맞는 재료를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궁합이 맞는 재료를 얻지 못한 하위 팀들은 다른 방식들을 통해 필요한 재료들을 얻어내야 한다.
맞교환하든지, 적절한 거래를 하든지, 아니면 아첨을 해서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 와야 한다. 그래서 결국 각자의 요리들을 만들어냈다.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음식 잘 안 해본 남자들이 만들어낸 찌개, 탕, 거의 다 수준급이었다. 진행 팀의 기지와 노력에 많은 찬사를 보낸다.
마지막 특색으로는 교제 위주의 시간들이다. 그래서 첫 날 저녁예배, 둘째 날 아침 묵상, 그리고 둘째 날 저녁 집회도 서로를 더 알아가고 더 귀히 여겨주는 방식으로 엮었다. 이틀 내내 보았던 말씀이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안디옥교회와 그 교회의 핵심인물이었던 바나바와 관련된 대목이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고 남을 잘 섬기는 인물이었다. 안디옥교회가 어느 초대교회들보다도 모범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나바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를 기억하며, 내가 상대에게 바나바가 되어주고, 상대가 나에게 바나바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교회를 다니면서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우리는 산상에서 주어진 다양한 시간들을 통해 서로에게 바나바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에 이번 수련회에 대한 기대감을 말할 수 있도록 했다. 공통된 의견이 맘껏 쉬고 싶다는 것이었다. 잠시나마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격리되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서로 한 마음이 된 남성들끼리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휴식의 기회였다. 그런 기대감들을 들으면서 한 가지 느낀 건, 이들도 많이 지쳐있구나, 하는 거였다.
삶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 수련회는 그들의 지친 심신을 다시 재생시키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것을 기대하고 그 자리에 왔던 것 같다.
아무튼 좋은 시간이었다. 인생의 현실이라는 것도 너무 소중한 거지만, 그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그것들을 물리적으로 잊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소중한 일이다. 이번의 수련회는 그랬다. 다른 때와는 달랐지만 그 목표대로 되었다. 잠시 잊을 수 있는 현실, 이처럼 인생의 필요한 비타민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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