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 이라고 엘에이에서 활동하는 화가에 대해 내가 눈여겨보게 된 것이 어느 새 삼십년 가까이 된다. 그림이란 게 정답이 있는 게 아니어서 내 느낌에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천하가 알아주는 화가의 그림이라해도 싫으면 싫은 거다.
작품 하나의 값이 웬만한 집한채보다 더 비싼 제프쿤의 번들번들한 조각은 내 눈에는 변기쪼각 나부랭이같아 천박하고 불쾌해서 거저 준대도 얼른 도로 팔아버리고 싶지만 박혜숙의 작품은 내게 뭔가 깊어보이고 나보다 한수 위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막 그림을 시작했을 때는 그녀의 퍼포먼스를 보러 비행기 타고 내려간 적도 있다.
개인적인 인연은 안 닿아서 말을 나누지는 못했는데 한국일보 엘에이 판에 나오는 그녀의 글은 눈에 뛸 때마다 찬찬히 읽어본다. 그녀의 글을 들여다보면 아직 나는 알지 못하는 한국화나 고시(古詩)에 대한 관심과 우리 옛것에 대한 취향이 엿보인다. 최근 그녀가 쓴 글은 첫문장부터 무릎을 치게 한다.
35년간 그린 작품들이 단 5분만에 전소했을 때 놀랍게도 처음 느낀 감정은 속이 다 시원했다 는 것이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려고 그림들을 정리하고 쌓고 구축하는 안간힘이 다 부질없고 저렇게 많이 쌍여있는 작품들을 보면 누군가는 제법한 화가로 알아주는 이가 있으리라는 자부심도 부질없고 이제는 가볍고 편하게 살리라 다짐하는 그녀의 글에서 또다시 한수 위네, 하는 생각이 스친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재해를 맞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을텐데 속이 다 시원하다니... 자신의 작품이라면 벌벌 떨며 남에게는 물론 자식에게도 그냥 안 넘기고 자신이 죽은 후에도 남들의 칭송을 받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념관등을 만들 숙원에 매달려 있는 화가들도 있는데..
한편으론 작품에의 열정과 성실함으로도 보이지만 어쩌면 나이를 먹고도 벗어나지 못하는 노욕같아 싫으면서도 나 또한 젊었을 때 유명 화랑에서 팔렸다는 자부심때문에 헐값에 팔아치운 그림들이 할 수만 있다면 되사들이고 싶을 정도로 눈앞에 아롱대는 판인데 속이 다 시원하다니..
조금씩 갖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려드니 예전엔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많은 것들
이 갖을 수 없었기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집을 샀을 때 우리하고 같은 시기에 집을 장만한 부부가 그릇장까지 딸린 식탁 세트를 척 사들이기에 엄청 부러워한 적이 있다. 결국 조그만 식탁 하나로 그 긴 세월이 갔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그것도 다행이다.
돈 많은 것, 예쁘고 늘씬한 것, 좋은 학벌과 좋은 집안, 그리고 누군가의 눈에 근사하게 보여 남들이 부러워 하는 것, 자부심, 그것들이 다 무엇인가. 어렸을 때, 한때는 사십이상 사는 것은 모욕이라고 까지 생각했던 바보시절도 있었다.
이제 와 보니 인간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성장과 변화를 창출해 내는 신비한 존재다. 사람은 절대로 안바뀐다는 말도 있지만 바오로사도처럼 한 순간에 바뀔 수도 있다. 너무도 미약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지만 그 미약함 때문에 오히려 더 값진 존재일 수 있다는 것, 과거는 결코 내 힘으로 바꿀수 없다는 것과 남의 마음 역시 내 힘으로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세월은 얼마나 값진 것이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시작 부분에 하얀 깃털이 바람에 날려 하늘 하늘 떠다니는 영상이 있다. 다 버리고 가볍게 떠다니다 앉게 되면 앉고 또 날게 되면 날고 주어지면 받고 거둬가면 내놓고..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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