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두 살위인 언니는 나와 한 이불을 덮고 자랐다. 아침 잠이 많은 내가 억지로 눈 비비고 일어나면 아침잠 없는 언니는 어느 새 일어나 나가 있어 늘 이불을 내가 개는 게 억울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그것만 빼면 내게 참 잘 해준 언니다.
자랄 때는 나처럼 별로 공부하는 걸 재밌어하지 않았는데 미국 와서는 사람이 바뀌었는지 열심히 공부하더니 마취사가 됐다. 덕분에 언니가 돈을 잘버니 종종 옷도 사주고 간혹 용돈도 줘서 이 나이되도록 언니에겐 내가 자신이 돌봐줘야 할 어린 동생같은 가 보다.
지난 달에 은퇴를 앞둔 언니가 마지막 세미나라고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덕분에 나도 가방 싸들고 집을 나와 며칠을 언니곁에서 뒹굴거리며 휴가를 보냈다.
기를 쓰고 관광 할 일도 없으니 슬 슬 걸어서 베이브리지 아래 식당으로 호사스런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생전 가지 않는 옷가게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김에 문화 생활은 한번 해야지 싶어 미리 오페라 티켙을 사두었기에 오랜만에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구경할 수 있었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나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씨즌티켙을 사기도 하고 해마다 두어번 오페라 나들이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멋내기에 지나지 않는건지 쉬이 나서지지가 않는다.
그런긴해도 오페라에는 악기와 성악이 모두 있어 듣는 것이 즐겁고 또 최소한이긴 하지만 연기가 있어 연극적이며 무대 장치가 주는 미적 즐거움과 특히 조명이 주는 환상적 분위기가 있어 가끔 가고싶어진다.
음악적인 관점에서야 이정훈기자가 늘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잘 소개해주니 내가 덧붙일 주제가 못되지만 무대가 모습을 들어내는 순간 드 치리코(De Chirico)구나 하는 느낌이 딱 든다.
드 치리코는 1888년에 그리스에서 태어난 화가인데 그리스 태생이라 그런지 그의 그림에는 신전의 기둥이라든가 그리스풍의 조각 형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모티브는 대단히 고전적이지만 그가 전하는 메세지는 초현실적인 것이어서 살바도르 달리와 더불어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인물중의 하나가 되었다.
학생시절, 젊었을 때는 강한 대비가 주는 강렬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신전 기둥의 짙은 그림자와 그 어둠에 감춰져있는 심볼등이 신비롭게 느껴저 잠시 좋아했던 적이 있다. 이번 리골레토의 무대는 드 치리코의 분위기와 대단히 닮았는데 그보다 더욱 단순화 시켜 미니멀리즘으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미니멀리즘은 말 그대로 단순해서 좋다. 초점만 제대로 잡으면 절제되면 될수록 전달하는 힘이 좋다. 단순한 무대설정이 조명 하나로 따뜻함과 비정함, 행복과 불행감을 전달하는 게 참 신비하다. 빛이란 얼마나 커다란 임팩트를 안고있는건지. 영국인들이 음울하고 이태리인들이 명랑, 활달하다는 게 우연이 아니다.
대개의 오페라가 줄거리는 대단히 상투적인데 빅토르 위고의 글을 모티브로 베르디가 작곡했다는 리골레토도 마찬가지. 그러나 여주인공 질다로 나온 여가수가 샌프란시스코의 처음 데뷰라는데 어찌나 노래를 잘하는지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른다는 우리네 표현이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고 마를로라고, 조연이지만 제법 큰 역이 강 주원이라는 한국인이여서 기분 좋았다.
이즈음 많은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재능을 들어내 자랑스럽다. 미술계에도 백남준이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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