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추석이 되니 한국 식구들과 나누는 추석 밥상이 그리워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가족은 평화로운 밥상을 위해 식사 중에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왔다. 그러나 이 원칙은 식사 시작하면서 곧 바로 어겨지기 일쑤이고, 식사를 마칠 즈음에야 누군가의 선언으로 다시 원칙이 세워지곤 하였다.
그야말로 지켜지지 않는 가족의 원칙 중 하나인데, 이번 추석에도 이 원칙은 무너졌다 부활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으리라.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가 주 쟁점이 되었을 터, 그 치열했을 추석 식사 자리에 같이 있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제까지 나는 대통령 선거 투표를 몇 번 했을까. 투표권이 주어지면서 참정권을 행사했던 이후로 두 명의 대통령이 바뀌었고, 이제 또 한 번 대통령이 바뀌는 시점이다.
한때는 대통령 후보 중 어느 후보도 나의 신념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투표용지에 왜 후보 거부란이 없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후보 모두를 거부함으로써 나의 정치적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또 국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잘 실천하지 못할 때, 그 대통령을 뽑은 투표자들을 추적하여 그 연대책임을 물었으면 하는, 비밀투표에 반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만큼 투표는 나에게 심각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 양상은 특히 범상치 않다. 무엇보다 후보들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집권 여당에서는 60, 70년대 한국 근대사에서 암흑의 시기에 해당하는 독재정권 독재자의 딸이 후보로 출마했다. 또 야당에서는 무리한 사찰과 여론의 정치적 탄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의 전직 비서실장이 후보로 출마했다. 그리고 마지막 후보는 정치가 출신이 아니고,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출신 또한 아니다. 그야말로 그 근거나 배경을 찾아보기 힘든 아주 독특한 후보자가 아닐 수 없다.
앞의 두명의 후보는 어떤 형태로건 과거의 그림자에 빚지고 있고 그 과거로 인해 상처받거나 소외되었던 세력을 다독인다는 차원에서 역사 평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세번째 후보는 본인 스스로 출마를 결정했다기보다는 여론을 통해 대통령 출마를 권유 받았고, 대통령 후보로 마침내 추대되었다. 이것은 무작위의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방식의 추대, 미디어를 통한 대중 정치의 혁명적인 출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후보 개인을 선택해 투표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항상 정당 혹은 정치적 세력에 근거해 정책을 판단하는 것이 정치적 신념에 대한 바로미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번 한국 대선을 앞두고 후보 개인에 준해 투표해야 할지도 모르는 혼란에 빠져 있다. 이것은 무능한 한국 정당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고, 많은 익명의 대중이 추대한 후보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미국 참정권을 아직 갖지 못한 나로서는 한국 대선 참여의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에 살면서 무슨 한국 정치에 까지 관여하느냐는 소리는 하지 말자. 한국의 정치가 미국에 사는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딱지를 떼기 전까지는 곳곳에서 드러날 것이다.
나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결국 한국이라는 커다란 간판을 뒤에 달고 뛰는 셈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문선영 퍼지 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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