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칼럼에 멀리 대학 가는 아들과의 이별에 대해 썼다.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예측은 되나 공감은 안 갔던‘엠프티 네슬’이 나의 현실이 된 것에 대한 나눔이었다.
그로부터 달 반이 지난 지금의 내 마음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차분해져가고 있다. 남보다는 받아들이는 일에 더 익숙한 신앙인이여설 수도 있고, 흐르는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손쉬운 보약이라는 상식적인 진리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지금은 아이나 우리나 떨어져 있음에 익숙해져 있다.
오늘은 그 2탄으로서 이 주제와 관련된 다른 글 한 편을 쓰려 한다. 다른 게 아닌 효도의 문제다. 효도란 유교적 배경을 갖고 있는 우리 동양인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아니, 피하기 힘든 삶의 주제다. 그래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아들과의 헤어짐, 그리고 부모님 방문을 통해 얻은 나의 묵상을 잠시 피력해 보고자 한다.
묵상의 주제는 효도‘하는 것’과‘받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다.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부모로서 효도 받는 게 더 쉽던가, 아니면 자식으로서 효도 하는 게 더 쉽던가.
나의 답은 효도하는 것이 더 쉽더라는 것이다. 내 경우 감사하게도 부모가 다 생존해 계신다. 현재 시애틀에 형님 댁 가까이서 사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 표 끊어드리면 이리 여행 오셔서 몇 주간 계시다 가시곤 했다. 그러나 2년 전에 있었던 어머님의 대수술 이후로는 이게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최소한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꼭 부모님을 찾아뵈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 아들이 LA로 학교 가기 전에 자녀들과 함께 시애틀에 다녀왔다.
효도하는 게 더 쉽다는 게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느낀 건 아들로서 부모님을 방문하는 것 하나로, 또 방문해 함께 있어드리는 것만으로도 효도는 이미 되더라는 것이다.
하루는 부모님 계시는 아파트에 몇 시간 같이 있게 되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TV를 켜놓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팔순 노인이신 어머니가 제 옆 와 앉아 계속 저만 쳐다보고 계셨다. 난 몰랐다. 계속 그렇게 쳐다보고 계시는 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아들이 그렇게 좋소?!”아들 쳐다보고 흐뭇해하시는 어머니의 표정이 아버지 눈에는 좀 우습게 보였던 것 같다.
평소 아내 놀리는 것을 삶의 재미로 삼으시는 아버지시기에 이 순간 이렇게 물으셨던 것이다.“아들이 그렇게 좋소?”거기에 맞받아치는 어머니의 대답.“예, 아들이 너무 좋소!”
그리고 주일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서 그 교회 목사님 주선으로 설교하게 되었다. 1부와 2부 두 번에 걸쳐 아들이 설교했다. 설교하는 내내, 설교 내용과 상관없이,“교인들이여, 내 아들이오!”하는 표정으로 아들의 설교를 듣고 계셨다.
다른 때 같으면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서로 먹먹해진다. 부모님으로서는 막내아들의 식구와, 우리들로서는 언제 또 뵐 수 있을지 하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헤어지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설교 마친 주일 오후에 우리는 캘리포니아로 내려와야 했다. 그러나 헤어져야 할 순간인데도 어머니는 상당히 씩씩하셨다. 아들의 설교로 인해 고무된 의기양양함의 약발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분은 이미 치유되신 상태였다. 아들이 당신 교회에서 설교한 것 하나로 이미! 이 일로 인해 내린 결론이다. 효도‘하는’건 그래도 쉽구나!
반면 자식에게 효도‘받는’것은 더 어렵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대학 가며 부모하고 떨어지는 순간을 매우 즐긴다고 한다. 부모인 난 엄청 힘든데 떨어지는 아이는 마냥 좋다. 해방감 때문일 것이다.
이게 바로 자식과 부모의 차이가 아닐까. 그냥 곁에 있어만 줘도 되는 게 자식인데 곁에 있으면 더 귀찮은 대상은 부모이니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특별히 부모의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그 차이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부모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그러나 이 내리사랑, 자식이 몰라준다고 섭섭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게 인간사의 순리니까.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 자신의 본성이니까. 이 내리사랑의 마음이 곧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니까.
그래서 효도‘하는’게 더 쉽고 효도‘받는’게 더 어렵다. 만고의 진리, 내리사랑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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