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스테이션이 잠깐 없어진 적이 있다. 음악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배경으로 편한 음악이 늘 귓전에 있어야 마음이 안정이 되는데 다른 스테이션은 정신 사납고 그렇다고 클래식 음악을 입맛대로 선택해 그 때 그때 기분에 맞춰 갈아 넣을 실력이 안되고, 이건 사는 데 지장이 있을 지경이었다.
이 김에 음악appreciation 공부나 해?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아서라, 하던 거나 잘 하자, 하고 맘을 접고 나니 음악에 대해 해박한 이가 부러웠다. 뭔가를 즐길수 있을 만치 안다는 건 참 오랜 시간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보, 씬디 셔만 한대. SFMOMA에서. 씬디셔만이 누구야? Conceptual artist. 내가 좋아하는 화가잖아. 남편은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듯 붙들고 있던 수도꾸에 고갤 묻는다. 누구는 재미있어서 밤을 꼴딱 새우며 보는 비디오도 안보는 사람은 재미 하나도 없다.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기게 되는데 현대미술은 정말 너무나 양심없게 대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자신의 비디오 아트와 헐리웃영화가 다른 점으로 헐리웃 영화는 싸고 재미있고 자신의 비디오는 재미없고 비싸다며 미술은 사기라고 일갈한 백남준은 참 시원했겠다. 그 자신이 천재니까 할수 있는 말이다. 범속한 사람이 구름같이 몰려있는 사람들 앞에서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면 망신만 당할 판인데.
어떻거나 나는 씬디셔만이 재미있었다. 그녀는 학생때 명화를 카피하다 보니 인류존재의 그 긴 역사속에서 안나온 그림은 하나도 없더라고, 그래서 더 이상 물감을 매개로 하여 그림을 그림다는 사실이 재미없게 느껴졌단다. 자신에게 맞는 매개체를 찾다가 오직 하나의 고유한 존재인 자신을 자신의 미술도구로 쓰기로 했다.
어찌보면 배우들의 스틸사진 같이 보이는 사진 한장에 멧세지를 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소도구와 의상이며 장소와 배경을 섬세하고 신중하게 연출해 내고 자신을 찍었다.
거의 백치같이 보일 지경으로 무심하면서 순진해 보이는 어린 여자의 모습, 그 소녀의 모습에서 시작해 조금씩의 분장이 더해져 짙은 화장에 마릴린 몬로 점을 볼에 찍고 담배 물고 비스듬한 눈길로 찍은 퇴페적 여인, 신비로운 표정으로 뭔가를 기다리는 여자, 부엌속의 일상에 지친 여자, 그리고 클래식 그림속의 여자, 최근에는 일생을 열심히 살아온 성공한 여자, 물질적인 비지니스워먼 등등...
온갓 여자의 이미지를 자신의 얼굴과 몸을 이용해 표현해 낸 다는 건 우리 모두의 맘 한 구석에도 감춰있는 비밀스런 환타지 아닐까.
일생에 걸쳐 한 미디움으로 줄기차게 추구한 작품들을 보면 결국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술 행위였던 거다. 그렇게 살기위해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자기애와 신념이 있었을까. 자기 자신에게 편안하지 않으면 결코 자신을 미디어로 쓸 수 없다.
그녀의 작품들은 오직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기에 창출해 낼 수 있던 작품들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게 뭔지, 자신의 가치관이 어떤건지, 그러는 과정에서 타인의 승인을 받아내려 안달하지 않고 일생을 바쳐 일관되게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해 낼 수 있는 저력, 그것이 관건이다.
목요일 밤에는 씬디 셔만이 추천한, 자신의 세계에 영향을 준 영화들을 상영하는데 얼마 전엔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보여줬다. 이젠 밤나들이 하는게 버거운데 케이가 청해줬기 때문에 갈수 있었다.
고맙다. 길동무의 보탬은 노년이 될수록 소중하다. 덕분에 봉 준호 감독의 시선이 얼마나 날카로우면서도 재미있는지, 질질 짤수 있는 순간을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버무려놔서 정말 재미있었다. 절망속에서도 해학이 있으면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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