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 언덕은 무랑루주와 로트렉의 그림으로 가장 가까이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로트렉의 그림으로 포장한 초콜렛이라든가 티셔츠, 가방,포스터등이 흔히 눈에 띄인다.

빠리의 건물들은 함부로 개축하지 못하게 법으로 보호되어 있단다. 오래된 것을 그대로 간직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정성과 품이 드는 일이다. 오래 묵은 건 쓰레기가 되던가 골동품이 된다.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유행에 휩쓸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유연하게 지키며 작게 사는 것은 사람이 골동품이 되는 삶의 한 조건이 되겠지만 예술작품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세월의 마모를 가려주며 오래동안 소중히 간직해 주고 또 그 값어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 보존케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고호의 천재성은 이제 그 그림의 천문학적인 값으로 증명이 됐지만 만약 아무도 그의 그림을 아껴하지 않고 그냥 버렸다면..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사람들이 잘난 척하고 쌀쌀맞아 미운 때도 많지만 한편으론 옛것을 아끼고 예술을 아끼고 인간의 긍지를 아끼는 것에는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반고호가 한때 살던 아파트도 그곳의 다른 건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다만 벽에 이 집이 고호가 살던 집이라는 조그만 안내 팻말 하나만 달고 서있다.

에디뜨삐아쁘가 노래했다는 아펠 에질 이라는 작은 캬바레도 우리네 보통 사람이 사는 집보다도 더 작은 크기로 예전의 모습을 고대로 지니고 있고 지금도 영업을 한단다.

내 집앞의 포취보다도 작은, 밝은 오렌지색의 벽과 초록으로 액센트를 준 입구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마치 예전의 그 시대에 내가 서 있는 것만 같다.

아펠에질 건너편은 몽마르뜨르 언덕의 포도밭이다. 반고호도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 작은 포도밭은 아직도 포도를 키워 와인을 만드는데 맛보다도 한정된 양과 이름값 때문에 비싸단다. 물질의 효용성만 금전가치를 갖는 게 아니다.

아마도 추억이란 이름의 상품은 갈수록 더 비싸질 것 같다. 스툴 세개를 내놓고 어패물을 팔면서 굴도 까주고 새우도 삶아주는 작은 가게가 길가에 있어 반가워 들어갔다.

팔꿈치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놓인 옆의 테이블에 연인인듯 싶은 남녀가 굴과 새우, 조개 등을 수북히 쌓아놓고 와인을 마시며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이 친절하다. 주인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 눈치인데도 뭔가를 자꾸 챙겨주려 해서 고마웠다.

명품가게나 화장품가게의 점원들은 웃는척 하면서 멸시하는듯한 태도여서 불쾌했는데 작은 곳, 조촐하고 시골 스러운 곳의 사람들은 말은 안통해도 태도가 따뜻하다. 명품 가게에서는 돈 많은 관광객 덕분에 돈은 벌면서도 기분 나빠 무시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내 작업실의 이웃은 독일 여자인데 무뚝뚝한데다 누구든 틀린 짓을 하는 꼴을 못보아 반장통장처럼 누가 복도에 물감을 흘리면 쫒아가서 야단치고 음악이 크다든가 망치소리가 너무 심하다던가하면 나서서 뭐라 하는데 그런가하면 언제든 무슨 일이 있으면 도우려 한발 먼저 달려오고 항상 남의 필요를 염두에 두고 행동해서 오래 지날 수록 진실한 인간성이 느껴져 독일사람을 싫어했던 선입관은 없어지고 오히려 신뢰가 가고 정이 든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알고보면 다 같은 게 인간이 아닐런지. 그저 누구는 약간 이기적이고 누구는 약간 이타적인 정도가 다를 뿐 인간의 희노애락과 감정은 다 같은 것 같다. 관계에 있어서 얼마만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