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참 인상이 좋다. 젊어서는 느낌이 좋다가도 늙어가며 추비해지는 사람들이 적잫아 지금도 여전히 인상이 좋게 나이 들어가는 그가 참 보기 좋다. 그는 알지도 못할 일이지만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한참 어린 나이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필력으로 등단하고도 여전히 학생이던 시절, 마침 그 대학의 국문과에 다니던 친구를 쫒아 학과 사무실에 들렀을 때였다. 그 역시 작가 지망이던 친구가 아주 친근한 태도로 그를 소개했고 그는 헐렁해 보이고 가식없이 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 후에도 문학과 관련된 이런 저런 자리에서 스쳤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나를 알리없다. 그런데도 젊었을 때 읽은 그의 단편소설이 내게 너무나 신선했기 때문에 나는 늘 그의 글에 관심을 접을 수 없었다. 통속소설이라고 맹렬히 두둘겨 맞기도 하고 그러다 역사소설이니 대하소설로 흘러도 나는 그의 젊은 시절의 작품‘술꾼’을 늘 마음에 담고 혹시나, 언제쯤이나.. 하며 그의 글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는 그 사이에 천주교 신자가 됐다. 그리고 또 최근엔 암으로 고생이 심했다 했다. 그런데 투병 과정을 지날 때 마치 하늘에서 불러주는 소리를 팔이 아프도록 받아쓴 기분이라는 그의 소설이 새로 나왔다. 드디어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글이 나왔구나 싶어 당장 책방에 가서 들쳐보지도 않고 책을 샀다. 책 앞뒤에는 천재작가가 죽음을 앞에 두고 인생의 심오한 뜻을 명상한 최고의 글이라는 칭송의 서평이 도배되어 있었다. 책장을 여니 ‘나의 스승인 아내에게 바친다’라는 헌사가 있었다. 잠깐 이게 뭔고,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진담야? 농담야? 싶은. 내가 아내라면 쪼끔 껄끄러웠겠네. 그냥 아내에게 고맙다. 라고 해주길 바랬을껄.. 싶은. 암튼 그의 글의 장점인 속도와 거침없는 전달력에 담긴 인생에의 깊은 성찰과 관조를 기대하며 자꾸 자꾸 장을 넘겼다. 혹시나, 혹시나.. 마지막 장의 넘기며 욕이 나오려는걸 참았다. 누구야, 대체 이따위 서평을 써댄 것들이.
작가는 손자들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썼다고 한다. 돈 잘 버는 할아버지로 자랑스럽게 남고 싶었던 걸까? 내돈 이십여 달러도 포함됐을터이니. 작가가 젊었을 때 쓴 소설에 ‘구멍’이란 것이 있었다. 후에 제목이 천하다고 다시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또 출판된 적이 있다. 젊은 의사가 병원의 호출을 받고 병원을 가는 길에 마치 환각속의 미로를 헤메는듯 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상황속의 더러운 군상과 마주치고 헤어지고 하는, 읽고나서 내가 이 책을 왜 읽었지? 내게 물었던 책이었다. 이번의 책은 그 책의 연작이다. 이제 적잖은 나이, 그간 겪었던 육체적 신고,그런데 그런 책이 쓰고 싶었을까? 내가 슬퍼할 일은 아닌데 나는 슬펐다.
세상엔 정말 좋은 글을 쓰면서도 일생동안 명성도 돈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저 쓰레기를 어쩜 좋아, 하는데도 돈도 왕창 벌고 재고 다니는 이들도 많다. 남편에게 세상은 공평찮다고 했더니 남편이야기가 그게 공평한 거란다. 돈도 많고 명예도 있는 자들이 글까지 좋으면 어떻 하냐고. 돈도 명예도 없는 이가 그래도 좋은 글이란 자부심을 갖고 끝까지 쓸수 있고 살수 있는 게 어디냐고.
생각해 보니 일리있다. 예쁜 여자가 속절없이 늙어가는 얼굴을 거울로 바라보며 안타깝게, 하염없이 맛사지하는 동안, 얼굴 별로였던 사람은 영혼을 가꾸는 좋은 글을 읽으며 평온한 맘으로 명상할 수 있을테니.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