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꽝에다 운동신경 제로인 나는 어렸을 때 한번도 빙빙도는 줄넘기 줄속으로 뛰어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애들이 늘 깍두기만 시켰지 제편으로 데려가려 하질 않다보니 그냥 혼자 노는 게 맘 편했던 것 같다. 이기는 게 싫은 건 아니겠지만 지는 건 싫고 그러다 보니 승패가 갈리는 게임에는 어떤 것에도 재미를 못부쳤다. 그래서 온국민의 여가활동이라는 고스톱은 물론 하다못해 민화토도 싫었다.
이렇게 천형같은 몸치로 공도 못차고 달리기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쓰며 노는 것의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던게 수영을 하면 온 몸을 감싸는 물의 느낌이 너무 좋았고 차근차근 걸으면서 온몸이 부드러워지는 것이 너무 좋아 하이킹을 즐겼다. 격렬히 빠르게 달리는 데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천천히 오래 걷을 때는 발목에 탄력을 주면서 모든 근육을 달래듯 폭신폭신 걸으면 아주 오래 무리없이 걸을 수 있다. 여성홀몬이 갑자기 없어져서 그랬을까, 한동안 발목신경통이 너무 심해 고생을 했다. 자다가 갑자기 도끼로 내려치는듯한 고통에 외마디소리 지르며 깨기도 하고 작업실에서 하루종일 서서 일하다 집에 와서는 발을 디딜수가 없어 차문을 열고 발을 내민채 디딜수 있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서 있기도 했다. 하이힐은 물론이요, 나중엔 운동화조차도 안되어서 금속으로 발모양을 맞춘 보조기를 신고야 보행을 할수 있었다. 그런 중에도 산에는 가고 싶어서 발목을 최대한으로 폭신폭신 내디디고 한걸음 한걸음 구령을 부쳐가며 종종 산행을 했었다. 한번은 라슨볼케노팍에 갔다가 그저 갈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자 하고 조심 조심 걷다보니 만피트가 넘는 정상에까지 갈수 있었는데 돌아와 장애인용 주차 공간에 세워 둔 차에 오르려니 장애자가 등산하는 게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심조심해서 걷기는 했을망정 고통이있는 것은 분명하니 누가 뭐랄 건 없는데 자랑스러우면서도 조금은 무안했다.
그런데 나도 명색이 여자인지라 가끔은 남들이 신은 날렵한 하이힐이 부럽다. 더구나 이즈음은 번쩍번쩍 보석 달고 굽이 날씬하게 높은 게 유행이라 저렇게 화려한 구두를 신고 발목을 드러낸 화려한 옷을 입고 춤추듯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있다.
몸이 아프면 도를 닦고 싶지 않아도 닦게 되 있는 것 같다. 내 몸이 아픈데 중요한 무엇인가. 금은보화도 소용없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세력이 있다한들 떨어뜨리면 뭐 할건가. 인류가 시작한 후 모든 인간이 겪었을 노화과정도 본인이 닥치지 않으면 모른다. 인간은 아무리 글자가 있고 역사속에 쌓아 온 경험과 문화가 있어도 결국은 자신이 겪은 일 이외에는 상상을 해 볼뿐 진실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인생을 살아보니 짧더라는 것도, 부귀영화 다 소용없다는 것도, 악을 쓰고 박박 우기며 이기려 했던 것도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젊은 사람들은 느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다르게 살 방도가 없는 것 같다. 젊은 이들보고 부질없는 것에 힘 빼지 말고, 어느 것 하나 갖고 갈 수 없으니 쉬엄쉬엄 살라면 그게 노인의 삶이지 젊은 이의 삶이겠는가.
고은 시인이 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란 시를 종종 뇌인다. 짧은 두줄의 시 속에 치열한 인생살이 후의 노숙한 경지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음에 차분히 와 닿는다.
봄이 오면 다시 산에 오르고 싶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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