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의 내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 삶의 구체적 목표가 사라졌을 때, 웃음이 얼굴에서 사라졌을 때, 직장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할 때, 10년 이상 무언가에 지나치게 열중해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잠깐의 휴가로 깊이 있는 휴식이 되지 못할 때, 취미 생활로도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없을 때, 쇼핑에마저 흥미를 잃었을 때, 스스로 왜 사냐고 묻지만 답이 안 보일 때”
위에 열거한 것들 중 5개 이상 해당된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위 현상들의 원인을 찾기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타고난 천성, 자라온 환경, 그리고 지금 처한 상황, 그 모두의 영향 아래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의 증상들을 하나의 병명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 속에서 희미한 해결책이나마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을 정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선 디디고 서 있던 곳에서 발을 잠시 뗄 필요가 있다.
내가 투자한 주식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선 자리에서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나를 가장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 ? 여행이다. 여행은 나를 최대한 내가 속했던 곳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만큼 딱 그만큼 내 시선을 깊숙이 내 자신에게로 들이대게 만든다.
물론 여행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 중에 하나일 뿐, 정답을 얻기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다고 해서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아니며, 갑자기 어떤 삶의 목표 의식에 불타오르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바쁜 일상 속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여행을 떠나야 할까?
나의 지난 여행들이 인생을 배우는 큰 계기가 되지 못했던 건 아마도 여행을 ‘쉼’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느끼는 감흥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니 그 느낌이 전부일 뿐, 내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그 여행이 의미가 없었다기보다는 제대로 여행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딘가를 더 많이 가서 보고, 사진을 찍고, 여권에 스탬프 수를 늘리는 건 나를 내밀하게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장소와 환경에서의 감탄은 있을지언정 삶의 감동을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내겐 어디를 다녀왔다는 기억, 그뿐이었다.
나의 삶의 반경은 서울의 한복판이었거나, LA의 한 귀퉁이, 그리고 동남아 대도시 어딘가였다. 돌아보면 여러 넓은 땅덩어리에 살았고, 또 많은 큰 도시들과 관광지들을 둘러 봤지만, 그것이 내게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평생 한 장소에서만 산 사람들에 비하면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보고 느꼈으련만, 내 맘은 그리 넓어져 있지도 않다.
나는 위의 10가지 항목에 모두 해당된다. 중증 환자다. 긴, 제대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다. 정말 사는 게 무엇인지를, 다양한 타인의 모습에서 배워보고 싶고, 동시에 타자가 아닌 나를 응시하고 싶고, 또 자연 속에서 배워보고 싶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가 살아온 모든 방식과의 결별로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하루가 되든, 일년이 되든.
김진아/ 광고전략가 쿠알라품푸르 Young & Rubi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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