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는 이민 초기 시절 내가 일했던 클리너 에이전시의 단골손님이었다.그 녀는전통적인 침례 교인으로 진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세탁물을 맡기러 왔다가 기독교 방송이 틀어져있는 것을 보고 크리스천이냐고 그 녀가 내게 물은 것이 우리 사귐의 시작이 되었다.그 때는 참 고달프고 외로운 이민초기 시절이어서 속 얘기할 친구도 없었는데 가끔 찾아 오는 지니가 짧은 영어로도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그 해 추수 감사절, 지니가 자기 가족 만찬에 나를 초대했다.그 녀의 남편은 칠면조를 굽고 두 딸들과 아들이 식사 준비를 돕는 동안 우리는 소파에 앉아 쉬었다. 닭고기보다 맛없는 퍽퍽한 칠면조 요리를 먹으면서 그들의 전통적인 음식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칠면조 와 옥수수 요리는 그 음식을 먹으며 과거를 되새기는 기념의 의미가 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만찬에 어린양과 누룩 없는빵을 먹으면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고난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것과 같다. 히브리어로 기념이란 뜻의 ‘지카론’은 단순히 회상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생하게 되새기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개인이나 가정, 나라마다 잊지 말고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하는 ‘지카론’이 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또 잊어서도 안되는 감사의 날이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추위, 식량의 부족으로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첫 추수 후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들에게 옥수수 농사를 가르쳐준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3일동안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칠면조 고기를 먹는 풍습은 그 때 새 사냥을 갔던 사람들이 칠면조를 잡아와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식탁에 5개의 옥수수를 올려놓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식량난으로 고생할 때 하루 한 사람에게 배당되었던 식량인 옥수수 5개를 의미하는 것이란다. 부모들은 첫 추수감사절이 지켜지기까지 고생했던 선조들의 수고를 자녀들에게 설명해 주며 옥수수를 먹는단다. 말로만하는 교육이 아니라 먹으며 하는 교육이다. 조상들의 고난의 역사가 있기에 오늘 우리의 풍요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식탁에서 교훈하는 것이다. 칠면조 고기를 긴세월 추수감사 메뉴로 고집하는 미국의 식탁이나 유월절의 어린양과 누룩 없는 딱딱한 빵을 수천년 동안 지켜 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을 보며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념적인 음식 문화가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고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말씀이 생각이 난다. 그 분은 6.25 가 되면 일부러 그 때 먹었던 음식을 드신단다. 조상들이 피난길에서 먹었던 소금만 넣은 주먹밥, 깡 보리밥…반찬투정하는 철부지 아이들에게 일년에 하루만이라도 깡보리밥과 소금 주먹밥을 먹는 날을 정해 선조들의 고난을 경험해 보면 감사가 나오지 않을까? 금년 감사절에는 지니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다. 추수 감사절 만찬에 초대해 주고 수시로 자신의 텃밭에서 나온 야채와 토마토를 날라다 주었는데 일을 그만 두면서 너무 오랫 동안 소식없이 지냈다. 평생을 교회 안의 일만하고 살던 내가 이민 후 교회 밖의 일을 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힘들 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내게 일자리를 주었던 세탁소 주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이 후회가 된다. 어차피 지나가는 과정이었는데 더 최선을 다할 걸… 이민 초기 적응기에 신세진 분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추수감사절이다.
(알마덴 한국학교 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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