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이 심하게 났다. 며칠간 연달아 사람 만날 일이 있어 과식을 하게 된 탓인가 보다. 젊었을 땐 맛있는 걸 보면 과식은 당연했는데 나이가 드니 매끼 먹는 것도 시간 지키고 양을 자제해야 한다. 안 땡길 때 먹어야 하는 것도 괴롭지만 먹고 싶은데 참아야 하는 것도 괴롭다.
일주일이 넘도록 고생하는 걸 남편이 옆에서 보더니 ‘나 당신이 왜 아픈지 알아’ 한다. 내가 머리를 너무 짧게 깍아서 그렇단다. 아파서 오만상 다 찌푸리고 있다가 박장대소 했다. 며칠전 갑자기 필이 꽂쳐서 머리를 남자 상구머리보다도 더 짧게 잘랐다. 나는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짧은 머리가 좋았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들어오면 남편은 싫어서 눈 흘기고 성질부리고 뭐가 되든 시비를 걸곤 했다. 내 머리 내가 자르는데 웬 상관이냐고 해도 결국 닥달 받는 건 나니까 포기 하게 된다. 게다가 그렇게 짧은 머리는 이목구비가 또렷이 들어나 얼굴이 작고 말라야 하는데 살이 쩌서 얼굴 꼴이 찐빵이 됐으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긴 했다. 근데 다시 체중이 줄자 또 머리가 자른고 싶어 지는 거였다. 누가 뭐래도 내 눈엔 세련되 보이고 또 시쳇말로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싫었던 게 좋아지지는 않는 법. 남편은 내 머리를 보자마자 요상한 표정이 되더니 그냥 고요히 고개를 돌린다. 이제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도 싫은 걸 그냥 삼킬 순 없어 기여코 나온 말이 아픈 건 오로지 머리 탓이란 다.
시간이 지나면 낫지 의사라고 별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하도 아프니까 의사에게 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우람한 한 쌍이 보무도 당당하게 나타났다. 방이 갑자기 꼭 찼다. 화등잔만한 여자의 눈두덩이는 번쩍번쩍 펄이 들어간 아이섀도우가 짙고 넓게 펼쳐저 있고 목더미를 볼수 없게 여러겹의 색색이 목걸이, 큼직한 가슴은 훤히 내보이게 시원스레 파여있고 한 눈에 보고는 절대로 기억해 낼수 없는 수 많은 색상의 의상이 그녀를 둘러싸 파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등장한 남자분은 우선, 백구두, 백바지에 팜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알록달록한 하와이안 셔츠. 얼마나 잘 어울리는 커플인지..
홀리듯 바라보다가 억지로 눈을 잡지위로 내려놨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한국 할머니가 들어왔는데 이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아마도 내 머리) 조금 전 내가 홀리듯 처다보던 커플을 바라보듯 눈을 뗄줄 모르고 나를 바라본다. 아마도 내가 청소년 같았으면 나쁜 짓하고 돌아다니다 엄마손에 머릿채 덜렁 짤린 딱한 지지배로 봤을 것 같다. 모르는 척 하며 책에 머릴 박고 있으면서 웃음이 나와 죽겠다. 하와이안 커플이나 나나 뭐가 다른가. 다 제 눈엔 그게 이쁘고 좋아보여 하는 거다.
사람은 전부 제 멋에 산다. 입으로는 다 자신이 못생겼다고 하지만 맘속 깊은 곳엔 그래도 이만하면 빠지지 않지, 하는 자만의 구석이 있다. 또 이 풍진 세상에 그것마저 없다면 무슨 힘으로 살아갈 것인가.
살면 살수록 앞만 보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남의 인생을 사느라 자신의 인생 허비하지 말라는 스티브잡스의 말은 그래서 더 생생히 공감된다. 머리 스타일이 목숨보다 중요한 세계관은 아니지만.
‘여보. 내 머리 꼬라지 좀 봐주세요. 이것도 내 멋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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